[위정현의 게임으로 보는 세상] 게임 ‘디지털제국 코리아’를 꿈꾸라

입력 2020-06-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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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게임학회장

▲위정현(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
▲위정현(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

극동이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는 ‘Far East’이다. 극동은 중국과 러시아의 북쪽 지역, 한국과 일본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다. 나는 이 극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뭔가 불편함을 느껴왔다. 왜 한국이 동쪽이면 동쪽에 있지 왜 극단적으로 멀리 있는 동쪽인가이다. 이러한 의아함은 조사차 터키에 출장가면서 풀렸다. 이스탄불의 호텔방에 걸려 있는, ‘미들 이스트’라는 중동을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 지도는 유럽과 중동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의 중심지인 이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속에 한국이나 일본은 저 멀리 세상 동쪽 끝에 있는, 갈 수도 없는 나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7천년 만에 극동이라고 불리던 나라에서 온 새로운 ‘문명’이 중동을 지배하고 있었다. 온라인게임이라는 한국의 문명이 터키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조사하러 들어간 나에게 극동은 문명의 변방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발신하고 있는 중심지였다. ‘나이트 온라인’, ‘카발’ 등 한국 게임은 터키를 중심으로 한 중동을 지배하고 있던 신문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이 글로벌 디지털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한국의 게임에 익숙해진 중동의 젊은이들, 한국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가치관을 갖게 된 세계의 젊은이들은 미국 정치학자 새뮤엘 헌팅턴이 주장한 ‘문명의 충돌’을 만들어 낸다. 한국 게임 ‘실크로드’가 그린 중세의 중국 영토가 실제의 역사적 영토보다 작다고 불평하고, 중국 젊은이의 머리속에 이 게임상의 영토가 각인될 것을 두려워하던 중국 정부의 우려에서 우리는 한국과 중국의 교류 역사상 최초의 문명 역전 현상을 발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중국이 미국이나 일본 게임에는 판호를 발급하면서 한국 게임은 4년이나 신규 게임 허가를 주지 않는 지 추론할 수 있다.

한국 게임은 유형의 산업 가치 이상의 존재이다.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매출 규모로 따지면 15조 정도이다. 그러나 무형의 가치는 15조라는 수치를 훨씬 능가한다. 예를 들어, 음악 산업에서 BTS의 보유사 빅히트엔터테이먼트의 2019년 매출은 5879억원이다. 그런데 BTS가 전세계에 문화적 충격을 주는 현실에서 아무도 그들의 영향력이 겨우 6천억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조사기관은 BTS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연간 6조원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게임은 수출만 해도 이미 7조원을 넘었기 때문에 경제적 파급효과는 그 몇 배가 될 것이다.

게임은 한국의 국격을 높인 공신이기도 하다. 게임 이전에 한국은 군사독재에서 겨우 벗어난 국가, 경제적으로 아직 개발도상국을 졸업하지 못한 국가, 1998년 IMF를 겪고 후진국으로 전락위기에 놓인 나라라는 이미지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게임이 등장한 2천년대 이후 한국은 기술강국, IT 리딩 컨트리라는 이미지로 세계인의 인식이 전환되었다. BTS가 한국의 K팝이라는 문화적 충격을 만들어냈 듯이, 게임은 한국이 가지고 있던 문화적 잠재력과 IT 파워를 전세계인들에게 알린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의 가치는 단지 산업적 규모인 15조를 넘어 10배인 150조로 인정해도 부족하지 않을까.

전쟁을 하지 않는 이상 현대의 국가는 물리적 영토를 확장할 수 없다. 그래서 무리한 전쟁 대신 세계는 디지털제국 확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에 돌입해 있다. 리그옵레전드, 넷플릭스, 디즈니, BTS가 교차하면서 경쟁하는 세계는 디지털 제국이 서로 충돌하는 문화적 패권과 경쟁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런 디지털제국의 패권 경쟁에 한국의 게임도 다시 진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게임의 리더들은 디지털제국 코리아의 징기스칸이 되어야 한다. BTS와 영화 이전에 디지털제국 코리아의 선두주자로 뛰었던 게임, 이제 그 영광을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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