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 가리지 않고 ‘침체 경고음’…간판 대기업도 신용 강등 ‘살얼음판’

입력 2020-06-08 14:22 수정 2020-06-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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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크레딧 위기 비교 (자료 이베스트투자증권)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크레딧 위기 비교 (자료 이베스트투자증권)
“소비 위축과 국제 교역 및 경제성장 둔화에 따라 한국 비금융 기업의 수익성과 재무 레버리지(차입)에 압박이 심해지면서 전반적 신용 여건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로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신용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한국경제의 대들보인 자동차, 정유, 화학, 철강 등은 사업환경 악화로 기존의 재무안정성에 생채기가 날 것이란 평가를 했다.

다른 신용평가사들도 올해 디스플레이, 조선, 해운, 철강 등 거의 모든 업종이 고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무더기 등급 하락이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의 경제 보복도 걱정꺼리다. 최근 법원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의 국내 자산 현금화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후 한·일 갈등의 불씨가 살아나면서 일본 의존도가 높은 소재·장비·부품 기업들은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8일 크레딧업계에 따르면 1분기 기업 등급 상하향배율은 2000년대 들어 최저점인 ‘0’을 기록했다. 등급이 상승한 기업 수를 등급이 하락한 기업 수로 나눈 등급 상하향배율은 수치가 1배 미만이면 신용등급 하향 건수가 상향 건수보다 많다는 의미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0.8배)보다도 더 낮다.

등급 상향 건수에서 등급 하향 건수를 뺀 값인 등급변동성향도 음의 값(2019년 1분기 -0.28% 2020년 1분기 -1.33%)이 확대됐다. 등급 상승사가 많으면 양으로, 하락사가 많으면 음으로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기업들이 더 어려운 사업환경에 처할 것으로 본다. 최재헌 한국기업평가 평가기준실 전문위원은 “하반기 등급변동의 방향성은 하락 우위 기조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히 코로나19의 부정적 영향을 받은 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업들 가운데 2분기 들어 등급 및 등급전망이 하향(부정적 검토 포함) 조정된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의 잣대 중 하나인 실적 전망도 ‘쇼크’ 수준이다.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가 존재하는 183개 기업의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추정치는 23조2281억 원이다. 이는 코로나19의 영향이 미치기 전인 3개월 대비 추정치인 32조8604억 원보다는 무려 29.3%가 빠졌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기업들이 혹독한 한 해를 겪을 것이란 경고등을 보낸다. 유완희 무디스 부사장 겸 수석 크레딧오피서는 “한국 기업들의 이익이 약화할 것이고, 일부 기업은 대규모 투자로 인해 재무 레버리지가 추가로 약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무디스는 22개 한국 기업에 등급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3개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하거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들도 예상되는 신용 위험 대비에 나섰다. 롯데쇼핑은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신용등급과 등급 전망 철회를 요구했다. 롯데쇼핑은 해외채 발행 계획이 없어서라는 설명이지만 2월 무디스가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함에 따라 추가 강등을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철회 전 롯데쇼핑의 등급은 투기등급 직전인 ‘Baa3’였다. KCC도 ‘사업상의 이유’로 무디스의 등급을 철회했다.

우리 기업들이 리스크에서 벗어날 해법은 없을까. 전문기관들은 글로벌 수요 회복만이 답이라 말한다. S&P는 “생산보다 더 큰 위험은 수요 감소”라며 “한국 기업들의 높은 수출 의존도를 고려하면 생산 감소보다 수요 감소가 실적, 신용도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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