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는 곧바로 ‘100일 의회’를 소집해 수많은 조치를 쏟아냈다. 긴급은행법과 관리통화법 도입을 통한 금(金)본위제 폐지와 통화 규제, 농산물 생산 제한으로 가격을 지탱하는 농업조정법과 기업 간 과열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산업부흥법 제정,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테네시강 유역 개발, 실업자와 궁핍 계층 구제를 위한 연방임시구제국 설치 등이다. 대규모 재정 투입이 뒤따랐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노동관계법, 실업보험 및 극빈·장애자 부조금제를 규정한 사회보장법도 만들어졌다. 미국의 전통적 자유방임주의는 후퇴했고, 정부의 시장통제가 본격화했다.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가 이론적 바탕이었다.
뉴딜은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추진됐다. 기본방향은 구제(Relief)·회복(Recovery)·개혁(Reform)의 ‘3R’였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사람을 돕고, 경제를 공황 이전 상태로 되돌리며,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제도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뉴딜의 공과(功過)는 지금도 경제학계의 논쟁이 진행 중인 사안이다. 정부 개입으로 시장 실패를 바로잡아 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을 개선했고, 오늘날 미국 노동·금융·복지제도의 기틀을 만든 전환점이 됐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그러나 비판적 경제사가(經濟史家)들도 많다. 뉴딜정책의 시장 통제와 경쟁제한이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려 노동수요를 감소시켰고, 사유재산권 위협으로 받아들여진 체제 불확실성이 민간투자를 위축시켜 경제 체질개선을 가로막았다는 등의 지적이다.
기실 7년 동안이나 뉴딜이 추진됐음에도 경제성적표는 별로 좋지 않았고 공황 탈출은 더뎠다. 1938년에는 경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미국이 불황에서 벗어나고 실업률이 급격히 감소한 건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식량과 물자의 증산, 무기 수출 확대가 이뤄지면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을 들고 나왔다. ‘디지털’과 ‘그린’이 간판이다. 2025년까지 76조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추격형 국가에서 선도형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발전전략”이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뉴딜의 밑그림은 DNA(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 생태계와 인프라 강화, 비대면(非對面)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다. 그린 뉴딜은 기후변화 대응을 통한 신산업과 시장, 일자리 창출이 목표다. 코로나가 촉발한 글로벌 경제구조 변혁의 키워드는 디지털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한국 경제가 선점해야 할 미래이자 활로다. 기반이 되는 정보통신기술(ICT)에서 우리는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뉴딜(New Deal)은 그 이름이 말하듯 ‘새로운 사회협약’이었다. 이 점이 간과되는 것 같다. 당시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방임주의 프레임에 갇혀 시장의 독점과 탐욕이 전혀 제어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정책 중심이 개입과 통제를 통한 시장 질서의 재구축과 제도개혁이었던 이유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코로나 이전부터 장기 저성장에 따른 일자리 감소, 기업 활력과 산업경쟁력 추락, 미래 성장동력 상실의 고질적 ‘한국병’에 깊이 신음하는 상황이었다. 포퓰리즘에 기댄 방만한 복지로 나랏빚만 늘리는 재정중독, 끊임없이 기업 발목을 잡는 과도한 규제장벽, 강성 노동계에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 등이 위기구조다.
‘문재인 뉴딜’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 방향성에 의구심이 짙다. 과감한 수술로 암종(癌腫)을 도려내고 위기구조를 혁파해 새로운 시장 질서를 세우지 못하면, 아무리 디지털이나 그린의 그럴듯한 포장을 입히고 돈을 퍼부어도 결국 구식(舊式)의 또다른 산업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개혁의 사회협약이 선행되지 않는 뉴딜은 과거 정권에서 야심찬 구호로 추진됐다가 소멸된 ‘창조경제’ ‘녹색성장’ 등과도 다를 바 없다. 한 세기 전의 루스벨트 뉴딜을 지금 다시 끌어오려면 제대로 배우기부터 해야 한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