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나라 구한자를 대하는 K-국뽕의 수준

입력 2020-06-09 18:00 수정 2020-06-1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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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들이 들어서자 공항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경비대와 군인들이 두 줄로 늘어서더니 거수경례로 그들을 맞았다.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길을 내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여행객 여러분, 지금 우리 공항에 영웅들이 도착했습니다. ‘Medal of Honor(명예훈장)’의 주인공들입니다.”

유튜브에서 ‘Medal of Honor Day’를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는 풍경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이들은 매년 3월 25일 열리는 ‘Medal of Honor Day’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현충일쯤 되는 국경일인 이날은 미국 군인들이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Medal of Honor’ 수여자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영상은 기내로 이어진다. 노신사들이 탑승하자 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착석할 때까지 박수를 치며 환영한다. 기내 방송도 거든다. “승객 여러분, 저는 오늘 미국의 수호자들을 모시는 영광을 안게 된 기장입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바친 이분들의 비행을 하느님께서 보살피실 것입니다.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물론 한 구석에는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What Ever~~”이라며 입을 삐죽대는 급식이의 모습도 보인다.

유난스레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고 미국 만세에 열광하는 천조국이라지만 국가 유공자를 대하는 이런 모습은 여러 생각을 안긴다. 전체주의 두 큰술에 민족주의 한 큰술, 열등감 한 꼬집이 버무려진 혼종으로 보이는 K-국뽕의 나라가 맞이한 호국보훈의 달과는 달라 보여서다.

천조국에 ‘Medal of Honor’가 있다면 K-국뽕에는 ‘태극무공훈장’이 있다. 클라쓰가 같다고 대접이 같지는 않다.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회자되던 ‘Medal of Honor의 위엄’은 오글대는 어벤저스 영웅주의가 밀레니얼 세대에도 먹히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천조국에서는 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상원 의원과 국회의장은 Medal of Honor 수여자와 마주치면 먼저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의 계급은 상관없다. 관례나 예의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연방법으로 규정한 의무다. 어기면 어떻게 될까. 메달을 모욕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10만 달러(약1억2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거나 1년간 감옥에 가야 한다. 메달 수여자의 인성이 쓰레기라도 할 수 없다. 메달에 표하는 경의는 그 사람 인격이 아니라 그가 남긴 행적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많으면 일단 틀딱 태극기로 몰리는 K-국뽕 참전용사들도 미군으로 참전했다면 대접이 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메달 수여자는 대통령 취임식을 포함해 연방정부가 주최하는 모든 공식 행사에 귀빈으로 참석할 권리를 갖는다. 정부든 대통령이든 메달 수여자의 참석 여부에 관여할 수 없다. 갈지 말지는 전적으로 수여자 마음이다. 참석자가 많지 않으면 대통령은 초조해진다. 영웅들이 그닥 인정하지 않는 자리이거나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든다는 시그널이 전국에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현충일 행사에 천안함 유족을 초청하는 문제를 놓고 소동이 일었다. 목숨 바쳐 싸운 용사들의 가족을 ‘문제’로 대하는 K-국뽕의 수준이다.

가족 얘기가 나온 김에 Medal of Honor 가족은 어떻게 사는지 보자. 메달 수여자는 본인의 풀네임과 함께 Family Name(성)이 미국 역사로 기록된다. 이 성을 가진 가족들은 ‘원하면’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추천장이나 입학 정원도 무시한다.(계속 등장하지만 Medal of Honor 수여자의 혜택은 ‘원하면’이다. 국가의 허락이나 타인의 배려 따위 필요없고 ‘원하면 갖는’ 권리로 연방법이 보장한다) 안중근 의사의 아들이 일제의 앞잡이가 되도록 방치해 놓고 낯 뜨거운 줄은 알았던지 아들의 이름만 역사에서 지워버린 K-국뽕과의 차이다.

‘Special identification card’를 꺼내보이면 미군 수송기는 그를 태워야 이륙할 수 있다. 그가 도착하면 대사관, 영사관은 안전하게 귀국할 때까지 24시간 보호해야 한다. 자동차에는 눈에 잘 띄게 큼지막한 별들이 잔뜩 붙은 번호판을 부착해 준다. 도로에 뜨면 5성 장군 전용 차량도 비켜야 한다. 사고 나면 불명예 제대 각이다.

그가 사는 마을 입구에는 “이 동네 국가 유공자 살고 있음” 안내판이 세워진다. 주소지에 특별한 우체통이 서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외지에서 온 뜨내기는 두 손 모으고 공손해져야 한다. 시비털었는데 상대가 유공자면 1억2000만 원 벌금 혹은 1년 징역이다.

누군가 이용수 할머니에게 ‘나라라도 구했냐’고 비아냥댔다. 천조국은 나라 구하면 매달 기본 약 1500달러(약 180만 원)로 시작해 매년 인상되는 연금을 준다. 사적연금도 10% 자동 증액되고 세제 혜택에 의료비는 평생 면제다.

K-국뽕은 나라 구하면 50만 원도 안 준다. 의료비는 알아서 내야 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걷어간다.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 1호 수여자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다. 그런데 태극무공훈장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K-국뽕이 나라 구한 사람을 대접하는 클라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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