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미의 고공비행] "30년 버리고, 3년 살려라" 정부의 이상한 셈법

입력 2020-06-09 15:00 수정 2020-06-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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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연구실에 앉아 수십년간 기초과학을 연구해 온 학자 A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 국가대표 육상선수가 되라는 미션을 부여받았다고 가정해보자. A가 취미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고작 2~3년 됐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둘 중 하나다. 처음부터 아예 포기하거나, 용기를 내 미친척하고 연습에 매진하기. 하지만 성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A는 대한민국의 원전 발전 부문을 30년 간 책임져 온 두산중공업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최근 두산중공업을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영정상화 방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한 마디로 지난 30년간 축적해 온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발전 설비 기술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겠다는 어마무시한 발상이다. 이는 곧 국내 원전 발전 시장을 100%를 점유했던 독보적인 기술과 경험, 두산중공업 전체 매출의 13%를 포기하라는 의미와 같다.

사실 이렇게 되면 국내 한 기업의 기술력이 사라진다는 단순한 개념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의 손실도 클 수 밖에 없다.

원자력발전은 전 세계 발전량의 약 10% 가량을 담당하고 있으며, 원자력 설비 기술은 국가 안보와 경쟁력과도 연관돼 있어 관련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자국 기업을 최대한 지원하며 독점 체계를 구축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원자력설비 산업은 계획부터 완공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으로 단기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성격의 사업이 아니다.

또 세계적 발전 업체들은 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쟁력은 물론 수익성 개선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건설이 위축됐지만, 최근 들어 일본, 미국 등 원전 선도국들이 원전산업을 재개하고 있으며, 아시아, 유럽을 중심으로 신규 원전 건설이 본격화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판단력, 그리고 그동안 우리의 노력, 땀방울로 서서히 축적된 기술과 그 중요성이 점점 퇴색되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그렇다면 채권단이 언급한 친환경 에너지 기업은 무엇일까. 두산중공업이 그동안 사업포트폴리오 전환을 위해 추진해 온 가스터빈, 풍력발전 등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이 수익을 내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가스터빈의 경우 이미 제너럴일렉트릭(GE), 지멘스,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MHPS) 등 글로벌 3대 기업이 관련 시장 70% 이상을 독차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풍력 발전 사업 역시 2006년부터 시작했지만, 11년이 지난 2017년이 돼서야 상용운전이 가능해졌다.

어떤 신사업이든 자리잡기 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릴 뿐 아니라, 수십년 이후에도 해당 기술이 정착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국가의 중요한 기간산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국민 중 한 사람으로 정부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두산중공업의 미래와 경영정상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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