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중앙은행을 선도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3월 3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임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종전보다 2배 큰 폭의 금리 인하인 ‘빅컷’을 단행한 후 이 같은 짤막한 성명을 내놨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세계 각국의 무차별 돈 풀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경제활동 전면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각국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뉴딜정책’을 능가하는 공격적인 재정과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연준은 3월 두 차례나 임시 FOMC를 개최해 ‘제로금리’ 시대로 회귀했으며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다. 기업어음(CP)과 일부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를 포함한 회사채가 양적완화 대상이 되는 등 파격적인 통화정책 행진이 이어졌다. 유럽중앙은행(ECB)도 팬데믹 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을 도입했고, 일본은행(BOJ)도 중소기업 무이자·무담보 대출에 나섰다.
각국 정부의 재정정책도 유례없이 과감하고 파격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3월 이후 4차례에 걸쳐 총 3조3000억 달러(약 4042조 원)의 경기부양책을 쏟아냈다. 현재 최소 1조 달러의 추가 경기부양 방안을 논의 중이다.
중국 정부는 5월 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특별국채와 지방정부 특수목적채권 발행,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상향 등으로 총 5조7500억 위안(약 988조 원)의 재원을 마련해 인프라 투자 등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성장엔진을 다시 돌리기 위한 ‘중국판 뉴딜’ 정책 선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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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시 이달 초 1300억 유로의 추가 경기부양책을 마련했다. 이로써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이에 대응하는 지출이 총 1조3000억 유로에 달하게 됐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다.
◇ 산더미처럼 쌓인 빚, 성장 낮추고 빈곤 악화할 수도 =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무제한으로 돈을 살포하면서 ‘큰 정부(Big Government)’ 시대로 귀환했다는 진단에 힘이 실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를 충격에 빠뜨린 초대형 이벤트들은 항상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역임한 람 이매뉴얼은 “기본적으로 ‘정부는 적’이라고 말한 로널드 레이건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뉴딜 정책을 이끌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케인스주의’도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반(反) 트럼프 진영인 워싱턴포스트(WP)조차 대공황 당시 케인스 경제정책이 정부 신뢰를 지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며 미국 정부의 초대형 경기부양책 방안을 지지했다.
반면, 무제한 돈 풀기 폐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초대형 경기부양 지출이 코로나19 피해를 경감시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빚이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빈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이 미래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이전인 지난해 글로벌 부채 규모는 이미 250조 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흥국 부채도 71조 달러 이상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전 세계 중앙은행과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까지 최소 15조 달러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함에 따라 IIF는 전 세계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작년보다 20%포인트 급증한 342%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부채로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다시 경기침체가 오는 더블딥(이중침체)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은 “부채 위기를 방지할 실질적 조치가 없다면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이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경제위기에 휘말릴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