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좋은 기업이 저평가되어 있는가

입력 2020-06-1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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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3월의 공포는 잊히고, 증시는 미래를 향한 장밋빛 기대로 가득하다. 불과 1개월 전만 해도 경기회복의 형태를 두고 U, L, W자냐 심지어 I자형이냐의 논란이 있었지만, 이제 V까지는 아니더라도 완만한 Z자형 혹은 G자형 성장을 전망하는 이가 늘어난다. 코로나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고, 오히려 재정 및 통화정책의 빠른 집행이 경기 정상화를 향한 움직임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자리 잡혀 있다.

경제지표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 서비스업의 고용 붕괴를 막기 위한 대규모 일회성 현금과 저금리 대출 장려 정책은 미국의 고용지표 개선으로 화답했다. 미국의 5월 실업률은 전월 14.7%에서 13.3%로 하락했고, 비농업 부문 고용은 컨센서스였던 833만 명 감소와 달리 250만 명 증가이다. 도시 봉쇄로 묶여 있던 자금들이 실물경제로 유입되는 증거이다. 주가도 올라왔고, 경제지표도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오히려 투자자들의 고민은 더 깊어진다. 지난 3월과 4월이 마음은 편했다. 좋은 기업들이 낮은 주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기업을 합리적 가격에 매수해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투자원칙에 비추어 볼 때, 3월과 4월은 ‘물 반 고기 반’이었다. 이제 낚시터에서 대어를 낚을 손맛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2분기 실적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1분기 실적을 바닥으로 2분기는 영업이익 역성장 폭을 축소하고, 3분기 이후 강하게 성장으로 돌아설 것으로 컨센서스가 형성되었고, 주가는 이를 반영해 달려왔다. 1분기와 2분기에 실적이 바닥은 통과했고, 이제 시장은 3분기 이후를 바라본다. KOPSI200 기준의 2020년 영업이익 추정치는 124조 원으로 아직 전년도 122조 원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다. 이익추정치 하향 조정은 대부분 상반기에 모여 있었고, 2분기 실적 발표까지는 기대가 낮게 유지되었다. 3분기 컨센서스 조정이 더딘 것이다. 실적 확인에는 시차가 있다. 1분기 실적은 2분기에 확인하고, 2분기 실적은 3분기에 확인한다. 1분기와 2분기는 기대가 낮았기에, 부진한 실적에도 주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반면, 하반기 이익은 하향 조정이 덜 진행되었고, 절대적인 레벨 역시 높다. 2분기 실적 시즌에 3분기 이후 이익 조정이 불가피하다. 연간으로 역성장이 수치로 확인되는 구간에서 주가가 올라서기 쉽지 않다. 2021년 이익에 대한 기댓값을 당기기에는 시기상조다.

둘째, 유동성이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 12개월 예상 PER가 12배를 넘어 13배에 다가서자, 고평가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저금리로 인한 증시로의 자금유입과 정책효과의 가시화로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짐에 따라 과거와 같은 잣대로 가치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주가 재평가 장세, 다시 말해 PER Re-rating 논리는 주가가 이익보다 빠르게 올라올 때마다 제기되었던 논리이다. ‘주가 = PER x EPS’에서 주가 상승국면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EPS는 하락하고, 주가는 상승하는 턴어라운드 시기이다. 이 국면에서 주로 생기는 잡음은 펀더멘탈에 앞서간 주가이다. 이어서 EPS 상승구간에서 PER가 오히려 하락하는 시기가 뒤따른다. 여기서 활용되는 EPS는 12개월 뒤의 이익으로 발표 후 실적에 비해 높게 형성된다. PER 하락과 EPS 회복 사이에서 변동성이 재차 팽창되는 시기가 뒤따르는 배경이다. 펀더멘털이 아닌 유동성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분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숫자를 살펴봐야 한다.

셋째, 분산이다. 시장이 추세적 상승기에 들어서려면, 주도주가 앞서 달려가야 한다. 주도주는 성장하는 산업 내에서의 좋은 기업이다. 한마디로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는 기업의 주가가 올라설 때, 상승 국면이 지속할 수 있다. 미디어에서 지나치게 강조하는 성장주나 가치주에 대한 구분은 의미 없는 논쟁이다. 국제산업분류기준(GICS, 긱스)으로 12개월 선행 이익변화율이 플러스를 유지하는 업종은 헬스케어, 커뮤니케이션, IT이다. 좀 더 쉽게 대표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NAVER, 삼성전자가 해당한다. 뒤처져 있던 삼성전자마저 움직이고 있다. 고민은 다른 곳에 있다. 여전히 산업 전망도 불투명하고, 이익 사이클도 하강 중인 산업재와 소재마저 주가가 움직이고 있고, 이를 가치주의 반격으로 확대 해석하는 분위기다. 상승의 과실이 주도주로 집중되기보다 주변으로 확산할 때, 상승의 힘도 약화한다. 좋은 기업을 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포트폴리오 가치가 늘어나고, 다가오는 무형재 시대에 생존할 수 있다.

3~4월 시장의 소음이 부진한 펀더멘털이었다면, 6~7월의 소음은 유동성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인과론이다. 주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투자자를 유혹한다. 이럴 때마다 남은 질문은 하나이다. ‘좋은 기업이 저평가되어 있는가?’ “공항의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 라운지가 그토록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값비싼 가구와 맛난 음식 때문이 아니라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매튜 크로포드의 말이다. 이제 투자자는 번잡한 공항 터미널이 아닌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소음과 거리를 둔 투자 판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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