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 논쟁이 정치권에서만 뜨겁다. 정작 정부는 미동도 없다. 기본소득제 논쟁이 야권에서 촉발된 데다, 현실성도 없어서다.
처음 기본소득제 화두를 던진 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이어 이재명 경기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대권주자들과 소수·원외정당들이 숟가락을 얹는 형국이다. 각각이 주장하는 기본소득 기준·대상·금액은 상이하지만, 도입 취지는 큰 차이가 없다.
단 정부는 정치권의 논쟁을 하나의 제안 정도로 여기고 있다. 여당이 더불어민주당에서 당 차원의 입장이 없고, 기본소득제 자체가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워서다.
먼저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현재 복지지출을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건 재정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생계급여 등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 영유아보육, 아동수당, 장애수당, 장애인연금 등 공적부조를 폐지해 기본소득으로 통합해야 한다. 단 공적부조 폐지만으론 지급 가능한 금액에 한계가 있다. 14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공적부조 지출은 올해 31조7000억 원(확정), 2050년 56조7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를 전 국민에게 지급한다면 월 지급액은 올해 약 5만 원, 2050년 약 10만 원이 된다.
저소득층, 고령자(65세 이상), 장애인 등은 오히려 기본소득 도입으로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이들의 수입을 보전하려면 지급액을 긴급재난지원금(가구당 월 40만~100만 원) 수준으로 설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올해 기준으로 월 14조3000억 원, 연 171조6000억 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 상황에선 현행 공적부조제도 간 연계·통합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는 “과거 기초생보와 기초연금을 통합하는 방안이 제안되긴 했으나, 구체적으로 검토되진 않았다”며 “기초연금은 선별지급이니 기본소득도 아니고, 지급액이 적으니 최저소득 보장도 아니란 점에서 논란은 계속 있었지만, 한 번 정착한 제도를 되돌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기초생보와 기초연금 지출은 전체 공적부조 지출의 81.1%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기본소득보다 현행 복지제도들의 효과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사회보장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소득 이전을 통한 재분배 효과는 가장 낮다”며 “현재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해도 1인당 지급액은 적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 복지제도를 폐지한다면 소득 재분배 효과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생보, 고용보험 등 기존 사회안전망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하는데, 그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집중하면서 복지 확대가 근로의욕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근로장려금(EITC) 등으로 보완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라며 “단, 기존의 복지제도를 보완한다고 해도 추가로 재정이 필요하므로 직역연금과 국민연금 등 개혁을 통한 지출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