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가혹한 위기 상황”… 반도체 충격 현실화되나

입력 2020-06-21 13:58 수정 2020-06-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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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ㆍ신냉전ㆍ中 반도체 굴기에 D램 가격 하락까지

“가혹한 위기 상황이다.”(6월 19일 화성 반도체 연구소에서)

“지금의 위기는 삼성으로서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해.”(6월 7일 호소문)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5월 18일 중국 시안 반도체 현장경영에서)

삼성전자가 최근 반도체 위기 상황을 잇따라 강조하고 있다. 지난 7일 이례적으로 호소문을 냈고, 이재용 부회장은 여러차례 국내외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위기라는 점을 역설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7일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서도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시장의 룰은 급변하고 있다”며 “위기는 항상 우리 옆에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삼성의 위기는 진짜일까. 삼성전자 캐시카우인 반도체 사업에서 위기론은 주기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들쑥날쑥한 업황 탓에 실제로 삼성전자의 실적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업계에선 최근 반도체 위기는 더 복합적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다 글로벌 신냉전, 중국의 반도체 굴기, 업황 자체의 오르내림 등 변수가 산적하다는 설명이다.

먼저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를 둘러싼 ‘신냉전’이 삼성전자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한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큰 고객 중 하나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들에 ‘거래를 끊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 등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기술 및 특허를 미국 기업들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삼성으로선 거절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형 고객 화웨이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무섭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중국 업체들은 현지 당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양쯔메모리(YMTC)는 4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인 128단 낸드플래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창신메모리(CXMT)는 연내 17나노(㎚) D램을 양산할 계획이다. 창신메모리가 계획을 실행할 경우 삼성전자와의 기술 수준은 3년으로 좁혀진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는 “중국 업체의 제품 양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제품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중국 업체의 기술 개발만으로도 투자를 끌어들여 공급을 앞당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반도체 연구소를 찾은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반도체 연구소를 찾은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 (사진제공=삼성전자)
새로운 성장동력인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사업에서는 1위 대만 TSMC를 따라잡는 게 숙제다. 기술력에선 TSMC와 대등한 수준에 올라섰다는 분석이 많지만, 고객 확보에서 크게 뒤쳐져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매출 기준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18.8%로 직전 분기인 1분기 15.9%보다 2.9%포인트 올랐다. 1위 TSMC는 1분기 54.1%에서 2분기엔 51.5%로 2.6%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점유율 격차는 무려 30%포인트가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퀄컴, 엔비디아 같은 기존 고객의 물량 확대 및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중장기적인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D램 가격도 내림세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9일 기준 D램(DDR4 8Gb 기준) 현물가격은 2.85달러를 기록해 4월 3일 3.637달러를 찍은 이후 두 달 넘게 하락중이다.

전고점 대비 21.6% 하락이면서, 지난달 말 기준 고정가격(3.31달러)보다 0.46달러 낮은 금액이다. 현물가격 하락세는 최근 들어 북미와 유럽의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KB증권은 “코로나19 확산세로 4∼5월에 북미, 유럽의 유통채널이 영업을 중단하면서 세트 판매 부진으로 D램의 재고가 일시적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대부분 고정거래가격으로 반도체를 공급한다.

그러나 현물가격 하락 추이가 계속된다면 고정거래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현물가 추이도 무시할 수 없다. D램 고정가격과 현물가격은 중장기적으로 수렴해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디램익스체인지는 지난달 말 보고서에서 “D램 공급사의 재고소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고정거래가격과 현물가격 간 격차가 계속 커질 수 있다”며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3분기 D램 고정거래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위기를 강조하는 건 결코 엄살이 아니다"라며 "이 부회장 주도로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잠시라도 주춤하게 된다면 경쟁자들에게 금방 따라잡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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