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수출 규제를 시행한지 1년이 다가오는 가운데 소재 국산화의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일본산 소재의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공정상 꼭 필요한 소재에 대해 일본이 기습적으로 수출을 규제하며 생산 차질을 우려했으나, 소재 업체들이 발빠르게 기술 국산화에 나서며 최악의 상황을 면한 것은 물론, 향후에도 안정적으로 소재를 구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정부는 작년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가지 품목을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꿨다.
28일 SK머티리얼즈에 따르면 반도체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투자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5일 열린 이사회에서 포토레지스트 생산공장 투자에 대한 보고를 진행했고 조만간 관련 투자를 진행해 내년까지 생산시설을 준공할 예정이다.
공장에서는 SK머티리얼즈가 개발에 돌입한 하드마스크(SOC)와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ArF PR)가 2022년부터 생산될 예정이다.
포토레지스트는 빛의 노출에 반응해 화학적 성질이 바뀌는 감광액으로 반도체 웨이퍼 위에 정밀한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노광 공정’에서 쓰이는 핵심 소재다. 반도체 고집적화에 따라 극미세한 패턴 구현이 요구되고 3D 낸드의 적층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앞서 SK머티리얼즈는 지난 2월 금호석유화학의 전자소재사업을 인수하면서 포토레지스트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금호석화가 보유한 EUV용 포토레지스트 관련 자체 특허까지 품게 됐다.
SK머티리얼즈는 이미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세정 가스인 초고순도 불화수소(HF) 가스의 국산화에는 성공했다. 반도체 공정 미세화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초고순도 불화수소 가스의 양산을 시작하고 2023년까지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다른 SK그룹사인 SKC 역시 물량의 대다수를 일본에서 들여오던 ‘최고급(하이엔드급) 블랭크마스크’의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말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갈 전망이다.
최근 SKC는 ‘블랭크 마스크 인스펙션 시스템(Blank Mask Inspection System)’이라는 장비 구매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블랭크 마스크 제작 과정에서 결함을 찾아내는 기기다. 가격대는 5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SKC는 지난해 4월 약 430억 원을 투자해 충남 천안에 최고급 블랭크 마스크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12월부터는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본격 양산을 하기에 앞서 품질 관리를 강화해 수율을 높이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SKC 관계자는 “블랭크 마스크는 현재 고객사 평가 등 협의 단계”라며 “연말에 본격 양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블랭크 마스크란 반도체 웨이퍼에 전자회로 패턴을 새길 때 쓰이는 핵심소재다. 최근 반도체 제조사가 적극적으로 증설에 나서면서 수요가 늘었다. 공정도 미세화하면서 공정별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글로벌 업체 2곳이 전체 공급량의 95%를 차지해왔다. 특히 최고급 시장은 그 비중이 99%에 달해, 국내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블랭크 마스크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외에도 솔브레인, 램테크놀러지, 동진쎄미켐 등의 중소 업체들도 소재 국산화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소재 국산화 노력에 올해 들어 일본에 대한 소재 의존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양산에 돌입한 불화수소는 올해 1~5월 일본 수입액이 전년 동기보다 85.8% 급감한 403만3000달러를 기록했다.
다른 소재들은 아직까지 수입액이 높으나, 국내 소재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연구개발에 착수한 만큼 곧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