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런 현상이 오로지 특정 사건 때문일까. 코로나19는 단지 ‘방아쇠(trigger)’였을 뿐이지 전환 자체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사실 전환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4차 산업혁명의 깃발이 세워진 이후 플랫폼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해왔다.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멋진 신세계’를 받아들이라고 말해왔다.
그렇게 플랫폼 경제는 ‘혁신’의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런 전환의 역동성을 하루라도 빨리 직시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이들이 플랫폼 경제가 생산하는 열매를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이를 놓친다면 노동자는 혁신을 위한 비용이 될 뿐이고, 기업은 착취자가 될 뿐이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리운전, 퀵서비스, 음식배달, 가사노동, 프리랜서 등 플랫폼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은 152만7000원이었다. 지난해 최저임금 월 179만5310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19년 민주노총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시간도 하루 평균 13.7시간으로 과잉상태도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시각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3등 시민’ 정도로 여기는 시선도 만연하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수년째 가족에게 숨기고 있다”라며 “떳떳하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자조 섞인 푸념은 플랫폼 노동자의 일상이 됐다.
진정으로 플랫폼 경제가 미래 경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플랫폼 노동자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 플랫폼 경제가 과연 얼마나 효율적이고 공정한지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공정한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 경력증명서법’은 이를 위한 첫걸음이다. 물론, ‘그걸 받아서 어디다 쓰냐’, ‘이미 경력증명서를 떼어줄 수 있는 곳이 있다’, ‘핵심은 그게 아니다’ 등 비판적 시각들이 있다. 하지만 경력증명서를 받는다는 것은 개인 자영업자가 아니라 법적 노동자로 전환을 의미한다.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완충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경력증명서 한 장을 발급한다고 그들에게 단번에 신세계가 펼쳐진다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이 살아야 플랫폼 기업도 살 수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일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평평한 경기장을 만들어 선의의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법을 시행해야 한다. 만일 플랫폼 기업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면, 오히려 문을 닫는 것이 플랫폼 경제 전반을 위해 옳은 일이다. 공정하게 노동자와 상생하는 기업들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길이다.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부가하는 것은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임금, 보험료 등 활동의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동참하는 기업에는 ‘규제’라는 모래주머니를 떼어줘야 한다. 권리와 책임의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어떤 플랫폼은 가격이 상승할 수 있고, 어떤 플랫폼은 지속할 수 있지 않다고 판명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길을 갈 때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불량 사업자의 종말이 새로운 신생기업과 노동자의 공간과 소비자 수요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물론,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좋은 세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가올 ‘멋진 신세계’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 그 창조적 파괴의 길에서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플랫폼 노동자는 비용이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