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뭔가를 해야겠기에 알량한 글재주로 방송국에서 스크립터를 하며 용돈을 벌기도 했고, ‘말’이라는 월간 잡지(아마도 586세대는 기억하리라)에 자유기고 형식으로 매달 원고를 보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지리멸렬함에 지쳐가던 무렵, 우연히 당시 신촌에 있던 이화예술극장에서 조조로 영화 한 편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운명처럼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 버린 ‘인생영화’와 조우한다.
이른 시간이라 관객은 나를 포함해 서너 명에 불과했다. 영화가 끝났지만 여전히 밖은 대낮이라 자연히 눈은 찡그려졌다. 그러나 나의 심장은 뛰고 있었고 가슴은 먹먹했으며 귓가에는 방금 전 들었던 영화 속 음악이 계속 맴돌았다.
영화 ‘미션’에서 이미 반해 버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천국’에서도 주옥 같은 음악들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 도저히 그냥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부음을 듣고 30년 전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문득 다시 한번 추억의 명화가 보고 싶어졌다.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가 연주했던 아련한 오보에의 선율 ‘미션’, 영화의 키스 장면만을 편집한 영상을 보며 눈물짓는 토토(자크 페렝) ‘시네마천국’, 그리고 데보라(제니퍼 코넬리)를 쳐다보던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의 젊은 시절 ‘원스어폰어타임인어메리카’….
천재 영화음악 작곡가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덕분에 나의 청춘은 진정 행복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