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乙들의 전쟁] “무분별한 전환보다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에 집중해야”

입력 2020-07-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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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0-07-16 18:26)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비정규직 제로는 허상”전문가 생각 들어보니

비정규직 인력 순환주기 짧아 집단으로 목소리 내기 어려워

1년 후 정규직 전환 4.9%뿐 전환 비용 커지며 신분 고착화

차별 금지법 있지만 범위 제한적 정규직 과보호 줄여 격차 좁혀야

비정규직은 산업화가 진행된 대부분 국가에 존재한다. 복지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존재가 사회문제인 국가는 드물다. 한국에선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10년 넘도록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그야말로 필요악이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한 결정적인 원인은 차별이다.

경제·노동 전문가들은 대체로 비정규직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업무의 계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문제로 전면화한 건 1998년 외환이기 이후이지만, 그전에도 비정규직은 존재했다”며 “대표적으로 조선업은 수주물량에 따라 필요인력이 달라져 모든 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에 민감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도 필요한 모든 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수요도 존재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 중 55.2%는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이 된 경우였다. 취업 준비기간이 짧고 요구되는 자격수준이 낮다는 게 수요자 입장에서 비정규직의 장점이다. 임금체불, 불법해고 등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계약에 따른 취업기간과 임금도 보장된다.

비정규직이 사회문제가 된 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부터다. 경영위기를 겪던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 목적의 비정규직 채용을 늘렸다.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3법이 시행된 뒤엔 노동법상 사용자의 의무를 피해가기 위해 용역·협력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을 늘렸다.

이는 차별로 이어졌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정규직의 임금은 계속 올랐다. 노 소장은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노동자들의 요구도 지속적으로 세졌다”며 “임금 인상에는 주도적으로 나서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을 안 하려고 하니,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만 늘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비정규직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애초에 기업들이 인건비를 아끼려고 비정규직을 뽑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규직이 회피하는 힘든 일도 비정규직에 몰렸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필요 자격 수준이나 생산성, 숙련도에 비례한다면, 비정규직은 이런 조건들과 관계없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받는 실정이다.

노동법 사각지대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간접고용,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사용자가 없거나 모호한 고용형태가 생겨나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은 인력 순환주기가 짧아 노조를 만들거나 집단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며 “가장 심각한 건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배제다. 임금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상당수 비정규직은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으로부터도 보호를 못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을 100으로 봤을 때 비정규직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64.5%, 300인 미만 사업체에서 42.7%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도 고용보험 74.0%, 국민건강보험 64.2%, 국민연금 61.0%에 머물렀다.

이런 차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이동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 교수는 “고용형태가 신분으로 고착화해 비정규직이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고 꼬집었다. 한국은행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대응: 해외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비정규직 임금근로자가 1년 후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2004~2005년 15.6%에서 2015~2016년 4.9%로 급락했다. 격차가 커질수록 기업으로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드는 상대적 비용이 커져서다.

해외에선 고용형태 간 격차가 우리처럼 크지 않다. 독일 등에선 짧은 계약 기간을 높은 임금으로 상쇄해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고용형태 간 이동도 비교적 자유롭다. 정규직 전환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서다. 2015년 임시직의 3년 뒤 상용직 전환율은 네덜란드가 70%, 스페인이 46%로 한국(22%)보다 2~3배 높았다. 이들 국가에선 인턴(일경험 수련생)의 형태로 신규인력을 모집한 뒤 업무성과가 뛰어난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기존 비정규직 또는 중소기업 근로자를 경력직으로 상시 채용하는 게 흔하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보단 차별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선 모든 비정규직이 업무나 생산성에 관계없이 정규직 전환을 바란다”며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하되, 임금을 생산성에 연동하는 식으로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해 점진적으로 격차를 좁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교수도 “현재도 차별 금지법이 있지만, 고용불안을 겪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고, 차별의 범위도 제한적”이라며 “조금 더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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