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독일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중국은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이자 유럽통합을 주도해온 독일에 유난히 공들여왔다. 독일 정부는 10월께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독일 최대의 이동통신 서비스 제공업체인 도이체텔레콤(DT)은 5G망을 구축하면서 중국 화웨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DT는 화웨이 제품 퇴출 시 5G 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생긴다며 강력하게 반대한다. 재계의 이익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경제부도 화웨이의 퇴출을 반대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국적을 이유로 기업의 시장 진입 금지는 안 된다는 원칙을 유지했다. 보안 기준을 준수한다면 화웨이의 시장 참여를 금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중국의 인권 탄압에 비판적인 사민당과 녹색당은 화웨이의 참여를 반대한다. 집권 여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도 찬성과 반대로 양분돼 있다.
독일은 중국과의 교역비중이 아주 크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 독일의 무역의존도는 70%가 넘는다. 선진국 가운데 대표적인 무역 챔피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은 미국, 프랑스에 이어 독일의 세 번째 수출시장, 첫 번째 수입시장이다. 2005년 메르켈 총리가 취임했을 때 독일의 대중 수출은 200억 유로에 불과했으나 15년 만에 5배도 더 늘어나 1000억 유로를 넘었다. 자동차와 화학제품, 정밀 공작기계 등이 독일의 대중 주요 수출품이다. 코로나19로 심각한 경기침체의 와중에 독일은 중국 시장을 더 신경쓸 수밖에 없다. 화웨이 제품을 금지할 경우 중국은 독일에 보복을 경고했다.
또 하나는 대외 무역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자유무역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해온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이를 앞장서서 훼손하는 마당에 독일은 이를 유지하려고 중국과의 관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비록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회원국에는 ‘체제적 경쟁자’이지만, 미국이 자유무역을 파괴하는 와중에 그래도 중국은 이를 유지하려 한다.
중국의 기업들은 독일과 유럽시장에는 거의 아무런 제한 없이 진출한다. 반대로 독일과 유럽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이를 해소하고자 EU는 중국과 투자보장협정 체결을 협상해 왔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진전이 없다. 올해 하반기 독일은 EU 순회의장국으로 9월에 중국과 EU의 정상회담 개최를 준비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이를 연기한 후 독일은 투자보장협정을 포함해 다른 분야의 관계 강화에 매진한다. 특히 기후변화에서 중국과 공동 대응하려 한다. 미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합의한 파리조약에서 탈퇴를 선언한 후 독일은 할 수 없이 중국과 공동대응을 모색해왔다. 세계 최대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을 제외한 기후변화 대책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EU의 공동외교안보정책을 통해 중국 대응도 꾀해왔다. 비회원국이 EU 회원국의 전략적 산업(에너지와 교통 등)을 인수합병하려 할 때 회원국이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이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EU 집행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
미 정부가 자유무역 체제를 유지하고 기후변화에 동참하면서 유럽 동맹국들에 대중 압박 동참을 요구했다면 더 많은 동맹국들이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자주의적 자유무역 체제를 부정하면서 중국 때리기에 앞장선 미국이기에 독일과 유럽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요시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1998~2005 재직)은 중국을 국제정치경제 체제에 계속 관여시켜야 하지만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일의 대중국 정책에 적절한 균형잡기가 필요하다는 것. 독일의 화웨이 금지·허용 여부에 따라 미국과 독일,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부분 개선되거나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