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은행권이 키코(KIKO) 통화옵션 상품 가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부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개시한 것과 관련 '조족지혈'의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피해 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줄줄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금융불안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금감원 등이 은행과 키코 가입 기업들간에 중재와 협상 유도에 발을 벗고 나서야 한다는 당위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미진한 지원에 속타는 기업들
금융위, 금감원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10월 29일까지 키코 거래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 개시와 관련 신한은행 등 9개 시중 은행이 1차로 선별된 24개사를 대상으로 343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완료했다.
그러나 이는 키코 피해 규모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란 평가다. 24개사의 통화옵션상품 손실 규모는 627억원(확정손실 35억원, 평가손실 592억원)이다. 이들 기업들에 대한 지원액도 피해규모의 절반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들 기업외에 키코로 인한 피해를 본 기업들이다. 10월말 현재 중기지원 프로그램에는 363개사가 신청했지만 이번에 지원받지 못한 기업들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10월초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방안에 따르면 8월말 현재 기업들이 키코로 인한 손실액은 1조7000억원에 달한다.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키코 가입 기업은 환율이 10원 오르면 계약금액 1억달러당 7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만일 내년까지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유지된다면 약 10조원이 손실이 예상된다.
주재성 금감원 부원장보는 지난 30일 브리핑을 통해 "검사역을 은행에 파견해 키코 거래기업을 유동성 지원을 독려하고 유동성 지원을 신청한 363개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시행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기업 대응 각양 각색
환율이 지정 범위를 웃돌 경우 상품 가입자의 손해는 오른 폭 만큼 무한대, 지정 범위 아래 떨어질 경우 계약이 무효가 되는 키코 약관의 특성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의 대응도 각양각색이다.
적극적으로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기업, 손해를 감수하고 계약을 일괄청산하는 기업. 현재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판단해 현 계약을 유지하되 유동성 지원을 받는 방법을 택하는 기업들 등 모두 키코로 인한 피해 해소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키코 피해기업들로 구성된 '환 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씨티, SC제일, 신한, 외환은행 등 13개 은행을 상대로 11월초 본안 소송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책위원회는 1차로 120개 기업이 이번 소송에 참여하도록 하는 한편 피해기업들을 모집해 2차 소송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또 키코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채무부존재 확인소송과 불완전 판매에 대한 은행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사정이 급한 기업들을 위해서는 판결 확정시까지 계약 효력정지와, 강제집행절차 금지와 관련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만일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송은 은행과 기업 어느쪽이든 상소를 불러 최악의 경우 최종심인 3심에까지 이를 수 있다.
금융위기로 인해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경영상황에 따라 소송은 기업들에게 시간상 금전상으로 구제 실효성에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 금감원 중재에 적극나서야
키코로 인한 기업과 은행의 분쟁에서 금융당국 중 은행 감독기구인 금감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촉구되고 있다.
키코로 인해 기업들이 금감원에 중재를 요청한다면 적극 발을 벗고 나서고 은행을 독려해 기업 지원에 발을 벗고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간 금감원의 안이한 태도도 문제시 되고 있다. 금감원에는 올 3월부터 키코로 인한 피해와 관련 기업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아 왔다.
금감원은 당시 키코가 환율급반등시 해지가 되지 않는 투기성향이 높은 거래임을 인지했지만 파생상품시장 위축을 우려해 규제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키코 관련 초기 민원에 대해 금감원이 처리한 것은 총 27건 중 취하 11건, 기각 12건, 처리중인 것은 단 4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오락가락한 환율 정책으로 인해 키코 피해 기업들이 속출하고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금감원과 금융위 등 금융당국이 최근에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에게 "키코로 손해를 본 기업들의 은행 상대 소송제기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장기간 소송에 따른 구제 실효성이 문제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창 금감원장은 "피해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은행과 기업간 갈등이나 의견차가 심할 때에는 금감원이 사실상 개입하는 데 애로가 있다"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피해기업이 금감원에 중재 신청을 한다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