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임대차 3법'…갈곳 잃은 '전세 난민' 몰려온다

입력 2020-07-31 06:10 수정 2020-07-3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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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서둘러 집주인에 '계약 갱신 거부 전화'…"장기적으로 세입자에게 불리한 정책"

'2+2 주택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 5% 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30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들 제도 도입으로 전월세 보장 기간은 4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계약을 갱신할 땐 5%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한다. 이미 체결된 임대차 계약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31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임대차보호법을 공포하고 바로 시행할 예정이다.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와 함께 '임대차 3법'으로 불리는 '전월세 신고제'(전ㆍ월세 계약 내용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는 내년 6월 시행된다. 부동산 업계와 학계에선 임대차 3법이 한국 주택시장 틀을 뒤흔들 것이라 예상한다.

◇하필이면 이때… 단기적으론 임대인 우위 시장

임대차 3법은 전세난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중에 마련됐다. 여당은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주택 임대료가 상승함에 따라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과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임대차 3법 필요성을 주장한다.

전셋값 상승 추이를 보면 여당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년째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오르고 있다. 최근 들어선 상승 폭도 가팔라졌다.

문제는 전셋집은 하루아침에 늘어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80.1로 2015년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는 높으면 높을수록 전세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풍조가 퍼지고 있는 데다 전셋집에 살면서 1순위 청약 자격을 얻으려는 이들이 늘면서 전세 품귀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물량이 부족한 임대인 우위 시장에서 임대료 규제가 강화되면 그나마 전셋집을 내놓을 수 있는 임대인(집주인)도 처음부터 임대료를 높여 부를 가능성이 크다. 1989년 임대차 보호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때도 전셋값이 사상 최고치인 19.8% 올랐다.

◇갱신권은 없고 전셋값은 치솟고 갈 곳 없는 '전세 난민'

가장 다급한 건 이미 전세 계약 만기가 다가와 당장 새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다. 계약 연장을 포기하고 새집을 구하려 해도 이미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가 됐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사는 Y씨도 다음 달 전세 만기를 앞두고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달 초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8000만 원 올려달라고 요구해서다. 단지 내 다른 전세 물건도 2년 전보다는 1억 원 안팎이 올랐다. Y씨로선 집을 줄여 가거나 다른 자산을 처분해야 할 처지다. Y씨는 "원래 집 근처로 가고 싶어도 매물이 없다"며 "빌라라도 가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세 기간이 남았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경기 광주시에 전세를 사는 K씨는 집주인이 만기를 두 달 앞두고 보증금을 1억 원 이상 올리지 않으면 계약을 연장 않겠다는 바람에 전셋집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K씨 사례처럼 집주인들은 임대차 3법을 피하려 서둘러 계약 갱신 거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법 시행 전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지했다면 이는 집주인의 확정된 권리로 봐야 한다고 해석하는 게 중론이다. 현행법에선 임대인은 계약 만료 1~6개월 전까지 계약 갱신 거부를 통보할 수 있다.

세입자를 구하고 있는 집주인도 계약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한 번 전세 계약을 맺으면 최장 4년까지는 집을 세 놓아야 하는 데다 임대료 인상도 제약되기 때문이다. 집주인으로선 전셋집에 유동성이 묶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참에 전셋집을 월세나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바꾸려는 임대인이 느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일부 집주인은 '반농담 반진담'으로 미국이나 독일처럼 면접으로 세입자를 들이겠다고도 말한다.

◇"전세 공급 위축…임대차 3법, 임차인에게 불리"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새로운 제도가 시장에 들어오면 일시적으로 시장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제도가 안정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그는 "4년 동안 퇴거, 무리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것일 뿐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며 "세입자를 보호하려면 임대차 보호 기간을 4년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초기 임대료 제한이 없는 상황에선 전월세 가격 안정이 어렵다"며 "임대차 3법은 세입자 보호 정책일 뿐 가격 안정 정책은 아니"라고 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는 "전월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고 지역 상황에 맞는 규제를 해야 했다. 순서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초기 임대료 설정이 자율화된 상황에선 가격 안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나아가 "보유세 인상 등 주택 보유 부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집주인이 이를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과정에서 전세가 위축하고 반전세나 월세가 늘어날 것"이라며 "주거비 부담이 적은 전세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임대차 3법은 장기적으로 세입자에게 불리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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