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주식투자 열풍이 국내 주식을 초월했다. 지난달 해외 주식 순매수 규모가 3조8000억 원에 달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이는 같은 달 코스피 순매수액의 1.7배 수준이다.
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1~31일)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 결제액(매수-매도액)은 31억9148만 달러(한화 3조8081억 원)로 역대 최대다. 이는 전달보다 319.4% 급증한 것이다.
특히 국내 투자자의 7월 해외주식 순매수액은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의 코스피 순매수액(2조2389억 원)을 월등히 앞섰다. 코스닥(1조6111억 원)도 합쳐야만 개인투자자의 국내 주식 순매수액이 해외주식 순매수액을 소폭 웃돈다.
지역별로도 미국, 홍콩, 중국, 일본에서 역대 최대 순매수 기록이 나왔다.
지난달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22억7263만 달러로 전달 대비 253.3% 급증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글로벌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7억6419만 달러)를 가장 많이 사들였다. 이는 전달보다 229.1% 늘어난 규모로, 테슬라는 전달에 이어 두 달 연속 순매수 규모 1위가 됐다.
이어 2분기 호실적을 발표한 초대형 IT 기업인 아마존(2억3862만 달러)과 애플(2억976만 달러)이 뒤를 이었다. 제2의 테슬라를 꿈꾸는 수소트럭업체 니콜라(1억4265만 달러)와 인공지능 신약개발업체 슈뢰딩거(7462만 달러) 등 올해 나스닥에 상장한 새내기주들의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는 투자가 늘었다.
‘해외주식 직구족’은 미국뿐만 아니라 홍콩,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시장으로 손을 뻗었다. 특히 국내 투자자의 홍콩 주식 순매수액은 4억7518만 달러로 전달 대비 936.6% 급증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중국도 2억3960만 달러로 171.1% 늘었고, 일본은 1억7269만 달러로 320.5% 급증했다.
특히 국내 투자자는 홍콩에 상장된 중국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SMIC를 1억4651만 달러 순매수했다.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대신 자국 파운드리 업체에 반도체 생산을 맡길 수밖에 없게 되자 국내 투자자는 SMIC에 투자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언택트(Untactㆍ비대면) 수혜 업종인 게임 종목이 인기가 좋았다. 남코 반다이(5124만 달러), 카도카와 드왕고(3672만 달러), 코나미(3455만 달러) 등이 순매수 상위 종목에 올라섰다.
증권가에서는 해외 주요 증시에서 미국 주식이 가장 유망하고 일본 주식의 매력이 가장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재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주식의 경우 정책 모멘텀이 둔화되면서 주가의 상승 탄력은 낮아질 가능성이 크지만 추가 재정 부양정책 시행 확인 후 상승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다”며 “일본 주식은 실물 및 심리 지표 모두 저점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코로나 이전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 장기화로 주가지수 상단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센 해외주식 투자 열풍이 원달러 환율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개인들의 직접 해외 채권 및 주식 투자의 경우 환헤지 비율이 낮아 외환시장에 상당한 달러 수요를 유발한다”며 “넘쳐나는 유동성과 투자처 부족에 개인들의 해외투자 지속되며 외환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