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꼬리잡기] 14일은 '택배 없는 날'…택배 노동자에게 휴일이 주어진 이유는?

입력 2020-08-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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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업계가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운영한다. '택배 없는 날'은 대한통운과 한진, 롯데, 로젠 등 국내 주요 4개 택배업체가 참여하기로 했으며, 이날엔 4개 택배사의 택배 화물 집하 및 배송이 일제히 중단된다.

'택배 없는 날'은 민간 택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하루 쉴 수 있도록 전국택배연대노조와 한국통합물류협회가 합의해 정한 날이다. 다음 날인 15일은 국가공휴일인 광복절이며, 일요일인 16일까지 택배 기사들에게 사실상 '3일'의 휴일이 제공된다.

그렇다면 코로나19로 인해 택배업이 특수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왜 '택배 없는 날'이 지정됐을까. 그 이유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에 있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우원식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우원식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과로사' 택배기사만 12명 추정…'전례' 없는 호황에 '전례' 없는 과로가 원인

고(故) 정상원 씨는 택배 기사였다. 일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가게 될 아이들과의 여행을 기대하던 정 씨는 5월 4일 아침, 눈을 뜨지 못했다.

월평균 8000개였던 정 씨의 배송 물량은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2월부터 1만여 개로 늘어났다. 거리 두기가 본격화된 3월엔 1만1330개, 4월에는 1만288개를 배송했다. 일평균 약 400개에 달하는 물량을 배송한 셈이다. 동료와 유족이 별다른 지병이 없었던 정 씨의 죽음을 '과로사'로 여기고 있는 이유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택배업은 역설적으로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 1분기 CJ대한통운 택배사업 부문의 매출은 727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5% 급증했다. CJ대한통운의 전체 매출에서 택배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다. 이외에도 한진은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5365억 원을, 롯데택배는 25.3% 증가한 6769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례 없는 노동 강도를 겪고 있는 택배 기사들이 있다. 전체 물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기사별로 할당된 택배 물량 또한 증가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택배업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산재로 인정된 질병 사망자', 즉 과로사가 올해 상반기에만 7명에 달한다. 과로사로 확인된 7명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례로, 택배연대노조가 파악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올해 과로사한 택배 기사는 벌써 12명에 달한다.

▲13일 오후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이 열리는 경기도 광주시 CJ대한통운 곤지암 메가허브 앞에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공동선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후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이 열리는 경기도 광주시 CJ대한통운 곤지암 메가허브 앞에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공동선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근로기준법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직'…사실상 휴가 없어

택배 기사들은 대부분 '특수 고용직'에 해당한다. 특수 고용직이란 근로자처럼 일하면서도 계약 형식은 사업주와 개인 간의 도급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개인사업자'로 계약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정해진 노동시간도, 휴가도 없다.

14일이 '택배 없는 날'로 지정되자, 택배 기사들은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비록 휴일이 끝나는 17일에는 누적된 물량으로 인해 업무가 가중될 수밖에 없지만 택배 기사들에게도 '휴가'가 생겼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의 김세규 교육선전국장은 "1년 중에 단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며 "택배업계 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인 휴가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택배 물량이 과도하다면, 기사 본인이 임의로 조정할 수는 없을까. 김 국장은 "그날 (기사에게) 내려온 물량은 무조건 다 배송해야 한다"며 "당일 정해진 배송을 하지 않으면 벌점, 벌칙, 혹은 벌금 등을 물리거나 불이익을 당한다. 심지어 계약 해지까지도 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어도 토요일 밤까지 근무하다 보니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며 "일반 근로자들은 연차나 월차 등의 휴가를 쓸 수 있지만 택배 기사의 경우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3일 서울 시내에서 한 택배 기사가 물품을 옮기고 있다. 물류업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과 롯데, 한진 등 대형 택배사들은 14일을 '택배인 리프레시 데이'로 정해 휴무하고, 17일부터 정상 근무한다. (연합뉴스)
▲13일 서울 시내에서 한 택배 기사가 물품을 옮기고 있다. 물류업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과 롯데, 한진 등 대형 택배사들은 14일을 '택배인 리프레시 데이'로 정해 휴무하고, 17일부터 정상 근무한다. (연합뉴스)

◇장시간 노동의 원인은 '분류 작업'과 17년째 동결 중인 낮은 '수수료'

택배연대노조는 '택배기사 과로사'의 대표적인 원인을 '장시간 노동', 그중에서도 '분류 작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분류 작업이란 터미널에서 택배를 전국 각 지점별로 분류해 차에 싣는 작업을 의미한다. 택배 기사들이 대부분 직접 수행하는 이 작업은 별도의 분류작업비가 책정되지 않아 사실상 '공짜 노동'이다. 분류 작업에만 6시간 이상 소요되고 나면 택배 기사들은 결국 배송도 늦게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분류 작업을 위해 별도로 아르바이트를 고용할 수는 없을까. 김세규 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터미널별로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때도 있긴 한데 고용비용을 회사가 아닌 기사들이 부담한다"며 "본사나 대리점에서는 고용비용을 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늦으면 오후 3시까지도 분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코로나19 여파로 물량이 늘었는데, 한시적으로나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7년째 동결 중인 택배 수수료도 과로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택배기사는 배송 건당 수수료가 사실상의 임금인데, 분류 작업으로 인해 배송이 늦어지는 데다가 돈을 벌기 위해 배송 물량도 늘리다보니 업무 시간이 증가하는 셈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택배기사들이 받는 수수료 단가가 건당 600~700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구조적으로 과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안 소장은 "단가가 올라가면 무리하게 하루에 400개씩을 나를 필요도 없다"며 "원청이 택배기사들을 직고용하거나 위탁 대리점을 없애 중간 단계를 없애면 소비자들의 추가적인 부담 없이도 단가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13일 서울 시내의 한 빌라 복도에 택배 기사에게 전하는 메모와 음료수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13일 서울 시내의 한 빌라 복도에 택배 기사에게 전하는 메모와 음료수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택배 노동자에게도 휴식이 필요…단순한 '이벤트'성으로 그치지 않아야"

"하루라도 쉴 시간이 있었으면 동생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서 지금은 살아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11일 국회에서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 촉구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故 서형욱 택배기사의 누나인 서형주 씨는 '택배 없는 날'과 같은 휴일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택배 서비스 산업 일자리 실태 조사 분석'에 따르면 택배 기사들은 하루 평균 12.7시간씩 월평균 25.6일을 근무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물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택배 기사들의 '과로'를 막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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