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렌트' 전나영 "'오직 오늘뿐'…지금, 우리 이야기죠"

입력 2020-08-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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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전나영이 '렌트'의 모린 역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뮤지컬배우 전나영이 '렌트'의 모린 역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뮤지컬 '렌트'에 자유분방한 행위예술가인 모린이 등장하는 건 1막 후반부에 이르러서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무대 분위기를 흔든다. 가난한 예술인들을 쫓으려 아파트를 철거하는 땅 주인을 향해 모린이 벌이는 7분여간의 퍼포먼스 '오버 더 문(Over the moon)'은 가히 '렌트'의 하이라이트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이다.

뮤지컬 배우 전나영이 모린을 만났다. 전나영은 모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성적인 발언과 돌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양성애자 모린을 표현하기 위해 전나영이 초점을 둔 건 '진실한 모습'이다. 단순히 화가 나 있거나 누군가를 유혹하는 모습에서만 비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전제로 깔렸다.

최근 서울 디뷰크아트센터에서 만난 전나영은 무대 위에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내미는 모습, 혼자 무대를 채워야 하는 과정에 대해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모린이니까"라고 했다.

"연출님(앤디 세뇨르 주니어)이 모린은 분위기를 깨는 여자라고 했어요. 갖춰진 걸 따라가는 것이 아닌 다른 색깔을 갖고 얘기하고 소리 내는 사람이라고요. 사람들은 그런 모린을 뒤돌아보게 되죠. 모린은 등장만으로도 극장의 공기를 바꾸는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나영은 '렌트' 이전엔 뮤지컬 '아이다'에서 아이다 역으로 관객을 만났다. 전나영 안에는 씩씩하고,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아이다'와 삶 속에서 갈등을 느끼지만 꿈을 꾸는 '모린'이 공존한다. 특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오랫동안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모린은 '정말 힘든 역할'이었다.

"모린처럼 반대되는 무언가를 향해 깨부수고 싶은 게 있느냐고 연출님이 물으셨어요. 갑자기 제 안에 화가 차기 시작했고, 그게 저를 열정적으로 만들었어요. 또 마크는 여전히 모린을 사랑하고 있고 하버드에 다니는 멋진 여성인 조앤이 모린을 위해 갖가지 세팅을 하잖아요. 정말 매력 있는 캐릭터예요. 그래서 힘있게 등장하고 싶었고요. 제가 왜 '오버 더 문'을 하는지도 정말 많이 고민했죠."

전나영은 '렌트'의 등장인물 중 '미미' 역할에 대해 잠시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아니다'라는 답을 내렸다. "모린은 지금까지 제가 표현하지 못했던 걸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제 옷장을 열었는데, 그때부터 재밌었어요. 노란색 닥터마틴 부츠를 신고 빨간색 벨벳 재킷을 입고 갔죠.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미스사이공'을 할 때 마시던 MD 물통을 두드리면서 '오버 더 문'을 불렀어요."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현대화한 록 뮤지컬이다. 네덜란드에서 출생한 전나영은 마스트리흐트음악원에서 수학하던 당시 '렌트'의 '시즌스 오브 러브(Seasons of love)'를 부르면서 '렌트'에 빠지게 됐다. 그리고 10년 만에 '렌트'를 만났다.

웨스트엔드에서 '레미제라블' 판틴 역으로 배우의 존재감을 알렸던 전나영은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했다. "엄마의 언어로 공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의미가 있어요. 영어나 네덜란드어가 더 편하지만, 마음에 제일 와닿는 언어는 한국어예요. 어릴 때부터 한국이 궁금했고,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었고, 한국에서 성인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궁금했어요. 아직 더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지만, 저 스스로 정말 고맙습니다."

▲전나영이 조앤 역의 정다희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전나영이 조앤 역의 정다희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전나영은 넘버 '시즌스 오브 러브'를 부를 때마다 울컥하곤 한다. 연출의 독특한 연습 방법이 영향을 미쳤다. 앤디 연출은 치킨집에서 가진 첫 만남에서 모든 배우에게 지금 이 순간 감사하는 것에 대해 말하라고 주문했다. 연습할 때도 배우들에게 둥그렇게 둘러앉아 '시즌스 오브 러브'를 바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라고 했다. 전나영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제 눈물은 희망찬 울먹임이에요. 렌트는 사랑과 희망의 에너지를 주는 작품이에요. 눈물을 흘리는 건 제가 슬퍼서, 힘들어서가 아니고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 때문이죠. 오늘 제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이 순간을 즐기자는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렌트'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됐던 동성애·에이즈·마약 등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하지만 젊은 예술가들이 그리는 꿈과 열정,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지친 현대인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렌트' 속 세상과 우리 세상은 많이 닮았어요. 요즘 더 와 닿는 주제인 것 같아요. 여유 없이 달려왔는데, 요즘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요. '나'를 사랑하고, '나' 자신을 힐링하면 희망이 생길 거라 믿어요. '오직 오늘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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