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청약 당첨가점 벽이 갈수록 난공불락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청약시장은 쉽게 넘볼 수 없는 '넘사벽'이 됐지만, 당첨가점의 벽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본격 시행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로 서울 아파트 분양 물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청약시장 열기는 열풍을 넘어 광풍(狂風)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
◇'대치 푸르지오 써밋' 전용 59㎡형 '최저 가점'조차 70점 육박
한국감정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 푸르지오 써밋'(구마을 1지구 재건축 아파트)에서 전체 물량을 가점제로 뽑는 85㎡(이하 전용면적) 이하 주택형의 당첨 최저 가점은 59점이었다. 최고 가점은 75점이었다.
이 중 청약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은 59㎡형의 최저 가점은 무려 69점에 달했다. 59㎡B형의 경우 당첨 최저 점수와 최고 점수 차이가 불과 1점이다. 이 주택형은 1순위 청약 당시 단 3가구 모집에 427명이 청약을 신청하면서 경쟁률이 427대 1까지 치솟았다.
주택 청약 가점제는 총 84점이 만점이다. 무주택기간 32점(15년 이상), 부양가족수 35점(6명 이상), 통장가입 기간 17점(15년 이상)이 돼야 만점을 받을 수 있다.
이 중 가점 69점을 얻으려면 본인을 제외한 부양가족이 4명(25점)인 경우 청약통장 가입기간은 14년 이상~15년 미만(16점), 무주택 기간은 13년 이상~14년 미만(28점)을 받아야 한다. 부양가족이 3명이라면 통장 가입기간(15년 이상·17점)과 무주택기간(15년 이상·32점) 모두에서 만점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30대 가장이 얻기엔 애초에 불가능한 점수다.
대치 푸르지오 써밋 아파트가 위치한 대치동은 지난 6·17 부동산 대책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일 만큼 '핫'한 곳이다. 사교육 1번가로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도 끼고 있다. 분양가와 주변 시세를 비교하면 10억 원의 시세 차익도 가능하다. 다만 모든 주택형의 분양가가 9억 원을 넘어 중도금대출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현금·가점 부자들이 10억 원 짜리 로또를 거머쥔 셈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0가구 이상 서울 민간아파트 단지의 분기별 1순위 청약 당첨 가점 커트라인 평균은 올해 2분기 기준 57.7점이었다. 지난해 2분기(42.9점) 대비 15점 가까이 올랐다. 서울 아파트 청약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 청약시장 열풍 넘어 광풍(狂風)
대치 푸르지오 써밋은 올해 서울에서 청약경쟁률이 세자릿수를 기록한 8번째 단지다. 지난주 청약시장에 나온 은평구 증산동 'DMC 센트럴 자이'(수색2구역 재개발 아파트)와 전날 1순위 청약을 진행한 'DMC SK뷰 아이파크 포레'(수색 13구역 재개발 아파트)까지 합하면 올해 서울에서 청약경쟁률이 100대 1을 초과한 단지는 10곳에 이른다. 올해 서울 분양 단지 27곳 중 37%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DMC SK뷰 아이파크 포레(평균 청약경쟁률 340대 1)는 그간 서울 최고 청약경쟁률 기록을 갖고 있던 '아크로 리버뷰'(2016년·306.6대 1)마저 뛰어넘었다. 열풍을 넘어서 광풍 수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에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통제로 이미 대부분의 신규 분양 아파트가 시세보다 수억원씩 낮은 가격에 나오는 데다, 분양가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서울 분양 물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 이같은 광풍을 촉발시켰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청약경쟁률은 지난 18일 기준 62.42대 1에 달한다. 지난 2년(2018~2019년) 각각 30.37대1, 31.60대1 수준이었던 경쟁률의 2배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금리가 워낙 낮은데다 정부의 주택 공급 방안이 공공과 임대주택 확대에 쏠려있다 보니 시장에선 서울 새 민간 아파트 공급량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며 "재개발ㆍ재건축 등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해 임대·공공과 민간 분양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이같은 청약시장 쏠림과 청약 가점 인플레이션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