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디지털경제로 확산된 트럼프의 무역전쟁

입력 2020-08-25 17:21 수정 2020-08-2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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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2017년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미국의 통상정책은 더 이상 예측 가능한 국제적 규범에 의하여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선동정치가의 예측 불가능한 충동적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비극이 반복되어 왔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근까지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자유무역체제와 그 제도적 기반인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트럼프행정부의 조직적인 무력화 조치로 2019년 말부터 가사상태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세계경제질서 흔들기에 더하여 코로나 사태를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시킨 트럼프의 각종 기행까지 보태져서, 이제 세계경제는 그 추락의 폭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가 추가로 날린 한 방은, 미국이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전통 제조업의 보호와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시작했던 미·중 무역전쟁을 디지털경제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해외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디지털서비스 기업들이 정작 해당 국가의 조세당국에는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한 국제적인 문제 제기와 비판이 커져왔다. 디지털 다국적기업들이 비록 해외시장에 고정사업장이 없더라도 그곳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에 대해서는 조세당국에 일정한 조세를 납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세’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국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도해왔는데, 최근 미국이 돌연 그 협상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인 협상 중단 선언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디지털세를 부과할 경우, 이미 프랑스에 그러했던 것처럼 100% 수준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협박을 이들 국가들에게 반복하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최근까지 OECD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온 디지털세는 해외시장에 물리적인 고정사업장(physical permanent establishment)이 없더라도 해외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디지털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직접 제공하고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이 해외시장의 조세당국에 대해서도 일정한 조세를 납부하도록 국제조세규범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시작된 배경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굴지의 디지털서비스 기업들이 프랑스와 유럽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해외시장에 고정사업장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 한 푼의 세금도 납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이들 디지털기업들의 평균 조세부담율은 9.5% 수준에 머물러, 평균 23.2%에 달하는 전통적인 제조업 부문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낮은 점 등에 대한 비판이 커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서비스 부문 다국적기업 중 전 세계에서의 매출액이 7억5000만 유로(약 1조500억 원)를 웃도는 기업의 총이윤 중 통상이익을 초과하는 초과이익의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매출이 발생하는 해외시장의 조세당국이 과세권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디지털기업들의 자산 중 지식재산권과 같은 무형자산(intangible assets)의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이들 디지털기업들이 세금부담이 낮은 조세피난처로 이전하여 막대한 규모의 조세를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저세율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즉 애플의 경우 유럽본사가 법인세율이 2% 미만인 아일랜드에 소재하고 있는데 그 결과 애플을 포함한 미국기업들의 이익이 아일랜드 국내총생산(GDP)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역시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룩셈부르크에 소재한 미국기업들의 이익이 룩셈부르크 GDP의 120%를 웃돈다는 사실은 미국기업들의 조세회피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OECD 조세제도의 기본 골격은 적정한 최저세율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를 도출한 후, 이보다 낮은 국가에서 조세회피를 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그 차이 만큼에 해당되는 세액 즉 회피한 조세를 추징하여, 다국적기업들이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한 조세피난처로의 이전 동기를 줄인다는 것이다. OECD에 따르면 위의 두 가지 조세개혁이 이루어지면 약 1000억 달러의 추가 세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러한 추산 결과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막대한 재정 부담을 겪고 있는 다수 국가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디지털세를 도입할 동기를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정반대다. 즉 이러한 디지털세의 부과 대상이 되는 기업들이 대부분 미국 기업들이고, 코로나 사태 극복이 시급한 상황에서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새로운 조세 도입 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주장과 일방적 협상중단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올해 연말까지 국제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국가주권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디지털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유럽 국가들의 독자적인 디지털세 부과 계획에 대하여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약 100% 수준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무역전쟁을 미리 예고해 놓은 상태이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이 미국 디지털기업들에 디지털세를 부과하고, 그에 대해 미국은 유럽의 농산품과 제조업 제품에 100% 수준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형태의 무역전쟁이 발발할 경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디지털기업들과 제조업 기업들은 일정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무역전쟁과 그에 따른 불확실성의 확대가 초래하는 경제적 비용이 단기적인 반사이익의 규모를 능가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11월 3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어느 측도 먼저 방아쇠를 당기기보다는 계속 정치적 효과를 고려한 으름장 놓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기대하는 대로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이런 우매한 치킨게임 형태의 무역전쟁은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선되는 충격이 발생할 경우 시작될 최악의 치킨게임에 대한 전략적 대비가 필요하다. 또한 이런 국제적인 혼란기에 우리 디지털기업들의 획기적인 도약을 도모하기 위하여 해외시장을 겨냥한 각종 디지털기술 및 서비스의 혁신 노력도 배가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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