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녀의 벽] 여성 임원 비율 고작 6%…유럽보다 5배 두꺼운 ‘유리천장’

입력 2020-08-27 05:00 수정 2020-08-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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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해진 文대통령 20% 할당 주문

국내 금융권에서 여성 차별은 해묵은 과제이자, 오랜 관습처럼 여겨진다. 불과 몇 해전 신입사원 채용에서 합격자 성비를 임의로 조정하기 위해 여성 지원자들을 탈락시키는 채용비리 사건이 금융권의 남녀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위적인 조정에도 불구하고 은행 평사원 기준 여성의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문제는 임원진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금융공기업에 한해 여성 임원 비율을 20%까지 강제 할당하는 안을 내왔지만, 보수적인 금융계에서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6일 이투데이가 분석한 국내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 11곳의 임원 268명 중 여성 임원은 17명으로 집계됐다. 임원 100명 중 6.34%가 여성 임원으로 남성 임원과는 15.7배나 차이가 났다. KB금융그룹의 경우 지주와 은행이 각각 3명씩 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한금융그룹이 4명, 하나금융그룹, 농협금융그룹 순이었다. 우리금융 지주는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었다. 이들 11곳의 은행 직원 중 여성의 비율은 51.0%로 절반 이상이 여성 근무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지만 임원으로 올라간 여성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다.

금융공기업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10개 금융공기업 임원 121명 중 여성 임원은 12명에 그쳤다. 여성 임원은 100명 중 9명 수준으로 10명도 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의 여성 임원 수가 2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국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은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었다. 나머지 6개 금융공기업은 여성 임원을 1명씩 두고 있었다.

해외 금융업체들과 비교해 보면 국내 금융시장의 유리천장이 얼마나 두꺼운지 알 수 있다. 글로벌 의결권자문사인 ISS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젠더 다양성을 보장하는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유럽에서는 여성 이사·임원 비율이 평균 30%에 달했다. 우리나라보다 5배나 많은 수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022년까지 공공기관 임원·관리자의 여성 비율을 최소 20%까지 늘리도록 주문했지만, 여전히 금융공기업에서 여성 임원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공기업에 한정된 지시가 시중은행까지 파급력을 미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큰 게 현실이다. 시중은행들도 여성 임원 확충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와 금융권 관계자들도 회의적이다. 이승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금융공기업에서의 여성 임원 비율은 정부에서 할 수 있겠지만 사기업에서는 정부가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영향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며 “사기업 임원을 특정 비율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이달부터 자산총액이 2조 원을 넘는 기업은 최소 여성 이사 1명 이상을 이사회에 둬야 한다. 하지만 자본금이 기준보다 아래 기업들에게는 강제성 없어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권 유리천장은 보수적인 업무와 조직문화로 견고하기로 유명한 만큼 단 시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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