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뒤 추석…실직자는 웁니다

입력 2020-08-30 10:30 수정 2020-08-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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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된 대기업 감원 바람…고용시장 연쇄 충격 불가피

▲26일 국회 앞에서 이상진(왼쪽 두 번째) 민주노총 부위원장, 박이삼(왼쪽 세 번째)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 권영국(오른쪽 세 번째) 정의당 노동본부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타항공의 인력감축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주혜 기자 winjh@)
▲26일 국회 앞에서 이상진(왼쪽 두 번째) 민주노총 부위원장, 박이삼(왼쪽 세 번째)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 권영국(오른쪽 세 번째) 정의당 노동본부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타항공의 인력감축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주혜 기자 winjh@)

“벌써 8개월째입니다. 처음에는 모아 놓은 돈으로 좀 쉬고 버티면 다시 조종간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추석 때 부모님 용돈조차 드릴 수 없을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국내 대형항공사에서 근무하다 작년에 중국 항공사로 이직한 A 기장은 올 2월부터 무급휴직 중이다. 상반기에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전 직장 동료 기장들과 만나 취미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꺼린다. 몇 달 쉬면 다시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최근에는 서로 한숨만 쉰다고 한다.

민족 대명절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감원 공포를 피부로 느끼는 근로자들의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대기업 인력 구조조정 바람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만나 ‘태풍’이 됐다. 특히 항공, 중공업, 무역 등 코로나19 영향을 크게 받은 취약업종 기업의 근로자들에겐 감원 한파가 직접 몰아치고 있다.

◇감원 공포 현실화…추석 앞둔 근로자 ‘쓴웃음’= 29일 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제조업, 항공업, 무역업 등 다양한 업종의 대기업들이 비용 효율화를 위한 인원 감축을 단행했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곳은 항공사다. 상반기 상장 항공사 6개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총직원 수는 3만6566명으로, 지난해 말(3만7230명)과 비교하면 664명 줄었다. 대한항공이 1만9063명에서 1만8681명으로 382명 감소하며 감원 폭이 가장 컸고, 그 뒤를 제주항공(-79명), 아시아나(-76명), 티웨이항공(-49명)이 이었다.

휴직 현황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등 대부분의 항공사에선 70%에 가까운 인원이 현재 유ㆍ무급 휴직 중이다.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더한 칼바람이 예고된 상황이다. 최근 인수·합병에 실패하고 재매각을 추진 중인 이스타항공이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700여 명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힌 데다, 나머지 항공사들에서도 휴직 인원에 대한 해고 결정이 언제라도 이뤄질 수 있다.

상반기 감원 칼바람을 맞은 곳은 항공업계뿐 아니다. 수주 부진과 과다한 채무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두산중공업에선 올해 들어 1100명이 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석유ㆍ화학 업계에서도 감원 규모가 컸다. 올해 들어서만 240명이 넘는 인원을 줄인 한화는 최근 무역 부문에서 추가로 희망퇴직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희망퇴직 해당 인원만 240여 명에 달한다. 교역량 감소와 코로나19 장기화로 무역 실적 악화가 이어진 영향이다.

OCI도 상반기 전 직원의 30% 규모에 달하는 590여 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마무리했다. 태양광 업황 악화로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군산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따른 조치다.

이외에도 LG이노텍(-776명), 현대차(-515명) 등 전자업계, 차 업계에서도 인력을 줄이며 '긴축 경영'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구조조정이 부르는 ‘도미노 충격’…신규 채용 시장도 급감= 이 같은 대기업들의 연쇄 인력 감축 요인을 단순히 코로나19 때문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몇 년간 경기침체 골이 깊어진 데다, 지난해 미ㆍ중 무역분쟁 사태까지 번지면서 대내외 환경이 모두 최악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력을 감축한 기업들과 해당 사업부에선 지난 몇 년간 적자 기조가 계속됐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구조조정 시기가 빨라지고, 규모 역시 훨씬 커졌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도 재유행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가 최소 1년 가까이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5월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32.5%가 "코로나19 경영악화 6개월 이상 지속 시 인력 구조조정 없이 경영이 어렵다"고 응답했는데, 이러한 가정이 현실이 된 것이다.

구조조정 바람에 더불어 신규 채용시장도 한파를 맞았다. 인크루트가 최근 상장사 53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올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회사는 전체의 57.2%에 그쳤다. 작년 하반기보다 9.6%포인트(p) 감소한 수치다. 실제로 하반기 채용 시기인 9월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채용 일정을 확정한 대기업은 SK 정도가 전부다.

문제는 대기업 인력 구조조정이 고용 시장을 비롯한 경제에 미치는 연쇄 충격이다. 구조조정 여파는 대기업 선에서 끝나지 않고 협력업체까지 번진다. 감원 불안에 떠는 근로자들의 지갑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줄어든 소비에 기업들의 유동성은 또다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고용의 주체인 기업의 생존을 위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측면에서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며 “유동성 지원은 기업 규모에 근거하기보다는 피해 규모에 근거하는 방식이 더욱 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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