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국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 와중에 증시는 34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기술주가 S&P500지수 랠리의 일등공신 노릇을 톡톡히 했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증시 벤치마크인 S&P500지수는 8월에 6.8% 상승했다. 이 기세가 31일까지 유지된다면, 7.1% 상승한 1986년 8월 이후 34년 만에 최고의 8월로 기록된다. 이달 S&P500지수는 공격적인 재정 및 통화 정책에 힘입어 3월 말 저점 대비 56%나 상승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은 “8월 시장은 중앙은행이 더 많은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할 것이란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면서 “모든 투자자가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유동성”이라고 진단했다.
기업 실적이 개선된 점도 증시 랠리를 부추겼다. S&P500지수에 속한 기업의 주당 순이익은 2분기에 3분의 1 가량 감소했지만, 시장 예상보다는 양호했다. 이에 골드만삭스 등 기관들은 올해 순익 전망치를 줄줄이 상향 조정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의 주가도 반등하면서 지수 상승에 힘을 보탰다. 글로벌 카지노 기업 MGM리조트 주가는 8월 들어 44% 급등했고, 크루즈 운영사 로열캐리비언과 노르위전크루즈, 미국 델타항공 등은 모두 20% 이상 올랐다.
무엇보다 기술주들의 활약이 컸다. S&P500지수의 대장주인 애플은 8월 주가가 18% 뛰며, 이달 처음으로 시가총액이 2조 달러(약 2400조 원)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자상거래 사업으로 폭풍 성장한 아마존은 최근 클라우드컴퓨팅 사업까지 호조를 보이면서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7일 종가 기준, 아마존 주가는 2010년 8월보다 20배 상승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알파벳, 페이스북 등 이른바 ‘빅5’는 S&P500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분의 1이 넘는다. 올 1월에만 해도 17.5%에 그쳤으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20%를 넘어섰다. 이들 5개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S&P500 기업들의 주가는 코로나19 사태가 닥치기 전인 2월 최고치 아래에 머물고 있다. 빅5가 S&P500지수를 먹여 살린 셈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글로벌리서치는 “기술주의 시총이 9조1000억 달러”라며 “이는 영국,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 전체 시총 8조9000억 달러보다 크다”고 분석했다. 2007년만 해도 유럽 전체 시총은 미국 기술주의 4배에 달했었다. 미국 경제를 할퀸 코로나19가 기술 기업들을 어마어마한 ‘공룡’으로 키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