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의 노동과 법] 공기업 노동이사제 도입이 우려되는 이유

입력 2020-08-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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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제활동에 따른 이윤이라는 과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이데올로기 만큼이나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과제 중의 하나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본격화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은 주식회사가 출현하면서 더욱 현재화(懸在化)되기 시작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됨에 따라 자본을 대리하는 경영자와 노동을 대표하는 노동자 간의 갈등은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다양한 법제도와 정책을 도입, 시행해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이사제이다. 이 제도는 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 시행하는 노사공동결정제도의 하나로, 선출된 노동자대표가 이사회를 통해 기관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대의적 경영참여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노동이사회는 원래 계급타협을 목적으로 독일에서 유래된 것인데, 1970년대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로 확산되게 되었다. 이 제도는 우리에게도 생소한 것은 아니다. 4년 전에 서울시가 독일식 경영참여제도를 벤치마킹하여 도입한 이래 서울시의 투자·출연기관에서는 실시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동이사제를 공공기관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여당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노동자대표가 이사회에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며, 정부로부터 출자 또는 투자를 받았거나 재정 지원을 받는 340개 공공기관에 노동이사 2명씩을 두도록 의무화한 것이 골자다. 이 제도는 문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현 정부의 역점사업 중 하나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못했지만,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176석이라는 다수의석을 앞세워 단독처리도 가능하다. 한편, 이러한 공기업의 독단을 막고 투명경영을 추구한다는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나 법제도를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추진할 때 부작용 또한 적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첫째, 우리나라의 기업 거버넌스 형태와 노사관계는 노동이사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독일 등과는 매우 상이하다. 이들 국가의 경우에는 산별체계를 기반으로 한 협력적 노사문화,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이원적 이사회 구조와 조합주의(corporatism)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별 체계와 대립적 노사관계, 일원적 이사회 구조를 가진 우리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노동이사의 경영참여로 인해 노사갈등이 커질 게 뻔하다. 공기업 노조의 입김이 더 세지면서 노조와의 갈등과 대립으로 공기업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될 수 있다.

둘째,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경우, 기존의 노사협의회 및 노동조합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물론 노사협의회나 노동조합을 통한 경영참여는 노동이사제에 비해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별개로 노동이사제를 수용할 경우, 노동이사의 조합원 겸직 여부를 비롯하여 노사협의회와의 권한중복에 따른 혼선이 우려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역할분담 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조직간 이기주의와 보신주의를 조장하게 되고 신속한 의사결정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

셋째, 현재 추진하고 있는 노동이사제의 경우 노동이사에게 부여되는 권한이 독일을 능가한다. 현행 법체계상 기업 내 노동자의 실질적인 경영참여는 비등기임원까지 가능한데, 이 수준을 넘어 경영참가를 하게 될 경우 주주권과의 충돌이나 다른 채권자들과의 형평성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최대한 기존의 법질서와 충돌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물론 현재는 공기업 레벨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향후 민간부문으로 확대될 것에 대비하여 노동자 측에 주주와 동일한 이사선임권을 부여하는 방식보다는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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