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삼성, 잃어버린 10년 현실화되나… 사법리스크에 휘청

입력 2020-09-01 15:27 수정 2020-09-0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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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결단 필요한 대규모 투자 등 경영 행보 차질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생산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생산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1일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기소 하면서 향후 삼성의 경영 활동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팀은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삼성 관계자 11명에 대한 ‘불구속 기소’를 결정했다.

지난 6월 26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및 수사 중단 권고를 검찰이 따를 것으로 잠시나마 기대했던 삼성 임직원들은 “최악의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계 관계자는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차세대 먹거리를 찾기 위해 총수와 경영진의 노력과 판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이 없다”며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를 무시하면서까지 기소를 한 것에 대해 우려한다”고 했다.

◇합병 비율은 시장이 결정… 시세조종 불가능= 검찰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됐다고 의심한다. 이 과정에서 자사주 매입을 통한 시세 조종 등 그룹 차원의 불법행위도 동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측은 합병 비율은 시장이 결정하며 시세조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시장에서 정해지는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당사자가 임의로 정하거나 서로 합의해서 정할 수 없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주가에 의해 1대 0.35로 정해졌으며, 2015년 7월 합병을 결정한 주주총회에서도 절대다수의 삼성물산 주주들은 여기에 동의해 합병이 성사됐다.

재계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미래 주가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라며 “삼성이 ‘삼성물산에 가장 불리하고 제일모직에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에 나섰다는 전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삼성물산의 해외 공사 수주 공시나 회사가 주식매수청구 기간에 ‘주가 방어’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시세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주가 방어는 모든 회사가 회사 가치를 위해 당연히 진행하는 것이고, 불법성 여부가 문제인데 당시 불법적인 시도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시안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글로벌 현장 경영을 이어갔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시안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글로벌 현장 경영을 이어갔다. (사진제공=삼성전자)

◇ 수천억 원에 달하는 국부 유출 가능성도=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승인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최소 7억7000만 달러의 피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검찰 수사팀이 주장하는 의혹이 엘리엇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다.

최근 엘리엇은 ‘정부 개입으로 부당하게 손해를 봤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법무부에 검찰 수사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ISD 중재재판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며 엘리엇의 요구를 기각했으나, 재판이 시작되면 민감한 수사자료 제공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지게 됐다.

결국, ISD 소송에서 엘리엇에 유리한 근거로 악용돼, 대규모 국부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한층 커진 셈이다.

로이터 통신은 “검찰의 이번 수사는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이 ISD 소송에서 엘리엇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 위치한 전장용 MLCC 생산 공장을 찾아 MLCC 제품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 위치한 전장용 MLCC 생산 공장을 찾아 MLCC 제품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제공=삼성전자)

◇ 삼성 경영 불확실성 커져… 한국경제에도 타격 우려= 이날 기소로 삼성의 경영은 다시 암흑으로 들어가게 됐다. ‘뉴 삼성 비전’ 달성을 위해 경영 현장을 누비던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삼성은 최근 4년 반 동안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과잉 수사’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6년 11월 이후 4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검찰에 10차례나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3번이나 받았다. 특검에 기소돼 재판에도 70여 차례 이상 출석해야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와 관련한 검찰수사도 1년 8개월이나 이어졌고, 50여 차례의 압수 수색과 430여 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가 이뤄졌다.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함에 따라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재판이 진행돼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던 반도체, 스마트폰 등 삼성의 주력사업 실적은 낙관할 수 없는 처지이며, 글로벌 경영환경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의 상황이다.

삼성은 미ㆍ중 대치 심화, 한일 외교갈등, 중국 IT 기업의 급부상, 치열한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선점 경쟁,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주력 사업의 실적 감소 등과 함께 이른바 ‘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초유의 복합 위기를 맞았다.

이처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근 삼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기회 선점은 고사하고 자칫 기회 상실로 경쟁 대열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반도체 연구소를 찾았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반도체 연구소를 찾았다. (사진제공=삼성전자)
게다가 3년 넘게 진행돼 온 국정농단 사건 재판도 아직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초 기소되면서 시작된 재판은 지난해 8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그해 10월 파기환송심이 시작됐지만, 특검이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기피신청을 함에 따라 현재 반년째 멈춰있다.

또다시 새로운 재판이 시작되면서 앞으로 5~10년 삼성의 경영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특히 오너 경영자의 리더십과 결단이 필요한 ‘180조 원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 ‘133조 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육성 방안’ 등과 같은 초대형 사업 구상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이 기소됨에 따라 국내 바이오산업과 해외 건설 프로젝트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수사의 직접적인 대상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물산의 경우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면서 바이오산업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과 해외 건설 프로젝트 수주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공장 증설 등을 위해 대규모 외부 자금 조달이 필수적인 상황인데, 회계 이슈가 다시 부각되면서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정부의 차세대 주력 성장산업인 ‘바이오’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이 ‘바이오산업 육성’이라는 국가적 정책 기조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해외 공사 프로젝트의 경우 회사나 경영진의 재판 내역을 입찰 요건으로 요구하는 게 업계 관행이다. 경영진의 기소만으로 수주 심사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심화는 코로나19 사태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한국 경제에 초대형 악재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삼성 경영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삼성그룹이 비메모리, 바이오 등 차세대 미래사업 육성을 주도해 국제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데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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