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어서 연락했어요"…수기출입명부, 개인정보 줄줄 샌다

입력 2020-09-02 15:35 수정 2020-09-0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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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ㆍ자치구 관리감독 여력 없어…"가급적 QR코드 사용해달라" 당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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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홀로 영화관을 찾은 최성훈(30ㆍ가명) 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르는 한 여성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장문의 메시지에서 "마음에 들어 번호를 외워뒀다가 연락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을까. 사정을 알아보니 이 여성은 최 씨가 영화관에서 수기로 작성한 출입명부의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한 것이었다. 최 씨는 낯선 여성의 관심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자신의 전화번호가 여러 사람에게 노출된다는 사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출입명부 의무 작성이 일반음식점ㆍ휴게음식점ㆍ제과점 등으로 확대하면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불특정다수가 볼 수 있는 수기 작성 방식이 맹점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30일 0시를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수도권에서 시행됐다. 이에 따라 고위험시설ㆍ다중위험시설을 위주로 도입된 출입명부 작성은 일반음식점과 카페 등에도 도입됐다. 수도권 기준 일반음식점 28만8858개, 휴게음식점 8만2707개, 제과점 8840개가 방문자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스마트폰을 통한 QR코드 인증과 출입명부 수기 작성 방식이 병행 사용된다.

QR코드는 '누가', '언제', '어디'에 방문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나눠서 보관하다가 확진자가 발생하면 방역 당국만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정보를 암호화하고 나눠서 보관하다 보니 타인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작다. 수집된 개인정보는 4주 후 폐기돼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킹에 따른 유출 우려도 적다.

문제는 수기로 종이에 작성하는 출입명부다. 일부 사업장은 QR코드 방식을 적용할 여력이 없어 일종의 '방명록'을 준비하고 방문객이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를 직접 적도록 했다. 암호화되는 QR코드 방식과 달리 종이에 쓰다 보니 개인정보가 업주나 직원, 다른 이용객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업주가 '4주 보관 후 폐기하라'는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지도 확인할 수 없고, 출입명부 관리 부실로 인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크다.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김지현(29ㆍ가명) 씨는 "출입명부를 보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연락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출입명부 작성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필요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나 낯선 번호로 연락이 오면 무서울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중랑구에 사는 이기식(45ㆍ가명) 씨는 "얼마 전 가족들과 수기로 출입명부를 작성한 음식점에 다녀온 후 어머니께 보이스피싱 전화가 온 적 있다"면서 "수기출입명부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방역 당국은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 QR코드를 활용한 명부 작성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업주나 시설관리자가 애플리케이션 지원 스마트폰이 없거나 QR코드 사용에 익숙하지 않으면 따르지 않아도 된다. QR코드 방식도 △전자출입명부(KI-Pass) 다운로드 △상호ㆍ사업자등록번호ㆍ대표자명ㆍ대표자 휴대전화번호 입력 △사업자 등록증 촬영ㆍ전송 △휴대전화 본인인증 절차 △관리자 IDㆍ비밀번호 등록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일부 업주들은 명부만 갖춰놓기도 한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에도 관리감독을 해야 할 지자체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한 구청 관계자는 "명부에 적힌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관리ㆍ감독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출입명부 작성을 하고 있다"며 "인력이 부족한 만큼 시민 개개인의 양심과 사업장의 준법정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에) 더욱 세심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수기로 명부를 작성할 때 타인이 볼 수 없도록 하고 4주일간 보관하고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역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수기 대신 QR코드를 사용해달라"며 자발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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