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수박 겉핥기'식 집값 분석… "시장 불신만 키운다"

입력 2020-09-10 17:28 수정 2020-09-1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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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촌동 일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일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정부가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고 자평하며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한국감정원 주간 시세 통계에서도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세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연이은 부동산 규제 정책 패키지로 전세시장이 안정되고 있다고 자찬하고 있지만 지역별 세부 상승폭이나 전월세 실거래를 보면 말과 통계가 따로 노는 양상이다.

10일 한국감정원의 주간아파트 동향을 보면 이번주(9월 첫 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09% 올랐다. 2주 연속 같은 상승폭이다. 서울 전셋값은 이번주까지 무려 63주째 뛰고 있다.

감정원 통계상 서울 아파트 전셋값 오름세는 임대차 2법(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0.17%(8월3일 기준) 뛰었던 한 달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같은 추세를 근거로 정부는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정부의 분석은 현실과 큰 괴리가 있어 보인다.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만해도 이번주 전셋값은 0.13% 올랐다. 전 주(0.14%) 흐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강동구(0.15%)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강동구는 지난해 말부터 재건축을 진행한 대규모 단지들이 준공을 마치고 잇따라 입주했다. 그러나 양도세 비과세 거주요건 2년을 충족하려는 집주인들이 실거주를 택하면서 전세 물량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공급량은 적은데 교통 개선과 양호한 교육 여건으로 수요는 몰리다보니 전셋값이 급락하긴 커녕 오히려 뛰고 있다.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도봉구는 6주째 전셋값이 0.06%씩 오르고 있고, 성북구와 마포구도 한 주동안 각각 0.12%, 0.15% 상승했다. 은평구 역시 한 달 전(0.10%)과 이번주(0.08%)의 상승세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 신고된 실거래만 봐도 전셋값이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동구 고덕 그라시움 전용면적 84.94㎡형은 전날 7억2000만 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지난달 최고가(7억3000만 원) 대비 1000만 원 낮은 가격이지만 올 들어 이 면적 전세 거래 중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이 아파트는 현재 전세가 10억~11억 원을 호가한다. 인근 고덕 아르테온 전용 84.94㎡형도 전세 시세가 10억원을 웃돈다.

마포구 대장주인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2단지 전용 59㎡형은 이달 1일 7억3000만 원으로 기존 최고 전세보증금(7억 원)을 갈아치웠다. 도봉구 창동주공3단지 전용 79.07㎡는 이달 초 올 들어 최고가인 4억 원에 전세 세입자를 들였다.

그야말로 '통계 따로, 말 따로'다. 정부가 지역별 세부 시세나 시장에서 이뤄지는 실제 거래가격을 들여다보고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시장에선 그간의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내세우려는, '정책 효과 띄우기'라고 비판한다.

각종 통계를 분석해 국민들에게 정책 효과를 홍보하는 건 사실 정부의 수많은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거래 절벽 속에서 '수박 겉핥기'식의 분석으로 시장이 안정되고 있다고 단언하는 건 시장을 호도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정부가 통계를 입맛대로 해석해 시장의 흐름을 왜곡하고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를 알 만하다.

정부는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발표가 있었던 지난 8일 '6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 실거래가 하락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가 한바탕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언급된 사례는 △서초구 반포자이(84.94㎡) 7월초 28억5000만→8월 중 24억4000만 원 △송파구 리센츠(27.68㎡) 7월 초 11억5000만→8월 중 8억9500만 원 △마포래미안푸르지오 3단지(59.92㎡) 7월 중 14억→8월초 11억 원 △노원구 불암현대(84.9㎡) 7월 초 6억8000만→8월 초 5억9000만 원 등이다.

하지만 여기엔 법인이 아파트를 급매로 처분하는 등의 특수 거래가 담겨 있어 몇개 표본으로만 시장 상황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 반포자이 전용 84㎡형의 호가는 27억~32억 원에 달한다.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전용 59㎡형의 경우 13억 원대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물건이 14억 원을 훌쩍 넘기고, 호가는 최고 15억5000만 원에 이른다.

앞으로의 전세시장 전망도 시장 전문가들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임대차법이 정착되고 전월세 전환율이 현행 4%에서 2.5%로 낮아지면 전세시장이 안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주 열린 '제5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임대차법이 본격 정착되고 월차임 전환율 조정 등 보완 방안이 시행되면 전월세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면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전세 물건 감소는 마음이 조급한 수요자의 가격 협상력을 낮추는 요인"이라며 "이사철 이사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에 전세 물건이 더 귀해지고 있어 전세난은 더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정책 효과를 홍보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실제 시장에선 전셋값이 너무 뛰다 보니 국민들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해 괴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이는 시장의 혼란과 정부 정책의 불신을 키우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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