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코로나19로 인한 에너지 시장의 변화가 일시적 현상일까 아니면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까? 우선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는 데 이견이 없다. 석유 가격이 폭락하면서 셰일혁명 이후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의 에너지 주도권이 약화할지 모른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과 대대적 감산을 합의하면서 당장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셰일오일의 생산이 줄어들면서 석유나 가스의 주도권이 다시 전통 산유국으로 되돌아가거나, 에너지 거래의 결제수단이 달러에서 중국의 위안화 등 다른 화폐로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혹자는 코로나19 사태의 심대함을 고려해 역사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 소위 ‘AC와 BC’로 구분될 정도로 인간의 생활방식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에너지 사용 패턴에 짧은 시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견해이다. 오히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전통적 에너지 사용이 줄어들었지만, 세계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화석연료의 가격이 낮은 수준을 유지함에 따라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가 회복되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이완되지 않을까 우려도 있다. 그렇지만 기후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은 ‘그린딜’ 계획을 발표하며 지금의 사태를 친환경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우리도 지난 7월 ‘그린 뉴딜’을 발표하여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강화하기로 함에 따라 그 결과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바이러스 사태가 전 세계에서 파급력이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의 심장부’인 뉴욕증시에서 에너지 산업의 지각변동이 촉발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0세기 화석연료 시대를 이끌었던 글로벌 석유공룡 엑슨모빌이 100년 만에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서 퇴출됐다.
따라서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당장 에너지 시장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지만 그동안 가지고 있던 구조적 문제가 확대되면서 지금의 시스템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에너지 산업을 연상하면 발전소, 정유설비 등 중후장대하고, 사업도 공기업이나 초거대기업 중심으로 보수적이며 변화에 둔감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2010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유발된 후쿠시마 원전사고나 코로나19 사태처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아닌 자연적 요인이 에너지 시장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는 대규모의 충분한 공급 설비 확충과 같은 전통적 의미의 에너지 안보에서 비상시에 대비한 분산화 촉진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최근 들어 전기차나 수소차와 같은 수송수단의 변화와 정보기술(IT)이나 인공지능(AI) 도입을 통한 통합 에너지 효율이 강조되면서 새로운 기술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분야는 공기업보다는 민간기업, 거대기업보다 중소 전문기업의 참여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으며, 에너지 산업 간의 융합도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만 해도 발전 분야에 이미 민간 사업자가 30% 이상의 설비 점유율을 차지하고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사업에는 2000개가 넘는 민간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수소와 같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따라서 에너지 산업이 코로나19로 노출된 문제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기술발전 등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에너지 정책체제를 유연하게 바꾸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우선 경제개발 초기에 만들어진 에너지 계획부터 정비해 보면 어떨까? 사실 정부가 장기 에너지 수요를 전망하고 설비 건설 계획을 수립해봐야 종전처럼 그 계획을 실현하기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한 예로 장기전력수급계획이 수립될 때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정부의 장기계획에 따라 건설되었던 대형 원전이나 석탄화력과 달리, 재생에너지의 대부분은 단기간에 민간의 경제성 판단에 의해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그 결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신재생공사’와 같은 전문 공기업을 만드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정부 주도의 계획 대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담는 청사진으로 바꾸고, 오히려 목표를 구현할 정책 추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국제시장에 의존하고 신기술을 적용한 신산업이 에너지 가격에 민감한 만큼 전기요금 등을 보다 원가에 기반한 변동 체제로 바꾸고, 세제 개편을 통해 에너지원 간의 상대가격이 적정화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