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부동산에서 동산으로

입력 2020-09-14 05:10 수정 2020-09-1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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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길게 보면 돈은 증식할 수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돈 모으기 좋은 시장은 금리가 높은 편이다. 돈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반면, 경기가 위축될 때는 돈 벌 확률이 낮다 보니 금리 역시 박하다. 돈이 경제 생태계 구석구석까지 흘러갈 때, 비로소 경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멋진 미래는 돈의 물꼬가 성장으로 향할 때다.

아마존이 국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지 오래다. 애플 생태계의 프리미엄은 나머지 IT하드웨어 기업들의 가치 생태계마저 지배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사주를 매각해야 운용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도 재무구조가 건실한 자동차 기업 가치보다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최근 성장주들은 당장 성장 열매를 수확하지 못하는데도 과도하게 미래 가치가 먼저 반영되면서 출렁인다.

최근 주목받는 성장주들의 공통점은 ‘혁신’이다. 살아남는 기업은 스스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는다. 애플 역시 그렇다. PC로 시작했지만, 아이폰을 만들고, 스스로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해 진화했다.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기술을 접목해 미디어 산업을 접수했다.

기업의 생애주기를 살펴보면, 기업은 창업 후 제품을 출시한 뒤, 손익분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성장한다. 이후 정체 국면에 들어선다. 국가 성장 역시 기업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한국 경제는 청장년기를 지나 노년기로 접어들고 있다.

10년 전 한국 증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헬스케어와 커뮤니케이션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소재ㆍ산업재ㆍ금융 기업들이 차지하는 규모는 여전히 크다. 최근 한국 증시에서 자기자본순이익률(ROE)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함께 낮아진 배경이다. 즉, 이들이 그동안 국내 증시를 뒷받침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ROE 하락을 야기하는 요인이 됐다는 의미다.

한국의 낮아지는 ROE를 살리는 길은 성장성 높은 기업들이 이들을 얼마큼 대체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과거 경제 산업의 비중을 얼마나 빨리 대체하느냐에 따라 향방이 결정된다. 결국 정책과 돈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부동산보다 동산이 해법이다. 혁신 생태계로 돈을 유입시킬 수 있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유형자산을 토대로 이익을 창출했지만, 이제는 바뀌고 있다. 최근 대부분의 성장주는 플랫폼 등 무형자산으로 성장하는 기업이다. 돈을 집이나 토지로 바꾸기보다 좋은 기업의 주식으로 바꿀 때, 우리도 무형자산을 소유할 수 있다. ROE 개선에 힘입은 한국 증시의 PBR 재평가는 이런 변화가 이뤄진 다음에 이야기할 수 있다.

정부가 뉴딜펀드를 제시한 배경에도 이 같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시장에 나왔다. 물론, 선의로 가득한 정책이지만 아쉬움도 그만큼 크다. 특정 투자 대상 기업과 산업을 위해 인위적인 자금 투입을 ‘펀드’라는 형식을 빌려 했기 때문이다. 보이는 손의 개입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융은 정책보다 시장 기능을 믿어야 한다. 새로운 정책보다는 민간 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정책적 ‘보완’이 더 중요한 배경이다. 이에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지배구조 관련 법안이나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세제 ‘개편’이 더 시급하다. 아쉽게도 아직 그런 변화는 뒤따르지 않는다.

양도소득세의 대주주 기준금액은 너무 낮고, 주식시장에 장기투자에 대한 공제도 없다.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라는 형태의 주주환원도 동인이 부족하다. ROE를 높이기 위한 배당 유인 역시 요원하다. 여전히 적은 지분으로도 지배 가능한 한국적 지배구조는 개선 속도가 여전히 더디다.

예금 금리가 1%도 안 되고, 부동산을 향한 규제의 칼날도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자금유입 환경을 개선만 해준다면 돈은 부동산에서 동산으로 흘러갈 수 있다. 한국의 명목 GDP 대비 부동산은 2.5배인 데 반해 주식시장은 1배도 못 미친다. 올해 국내 증시도 올랐지만, 부동산의 자산 규모는 더 급격히 늘어났다.

증시는 유동성의 힘만으로 치고 나갈 수는 없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경제와 금융시장의 괴리는 더 커졌다. 연말 대주주 양도세 관련 물량 출회는 불가피하며,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도 크다. 미국 성장주 급등으로 인한 변동성 팽창도 이미 시작되었다. 9, 10월의 변동성 구간에서 성장 기업이 오늘보다 더 합리적인 가격에 도달할 때를 기다려보자. 준비한 현금을 주식으로 바꾸는 시점은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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