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밀어붙이는 법 가운데 보험업법 개정안이 있다. 현행 법은 보험사가 다른 회사 주식·채권을 보유할 때,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총자산의 3%를 넘지 못하게 한다. 개정안은 여기의 취득원가를 시장가격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주식의 현재 가치를 자산운용에 반영하는 게 공정하다는 논리, 보험사가 특정 기업에 몰아서 투자했다가 부실로 고객이 피해 보는 일을 막자는 명분이다. 좋은 의도로 포장되기는 했는데 치명적인 독(毒)이 묻어 있다.
이 법에 걸리는 보험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두 곳으로 특정된다.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가 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 해체’ 시나리오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 주식은 국민연금이 11.1%, 삼성생명 8.5%, 삼성물산 5.0%, 이건희 회장 4.2%, 삼성화재 1.5%, 이재용 부회장이 0.7%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의 핵심 고리가 삼성물산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물산의 17.5% 대주주이고, 물산은 생명의 19.3% 주주다. 요컨대 이재용은 물산→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를 통해 20% 남짓한 지분으로 전자의 경영권을 행사한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 틀에서 삼성생명을 뽑아내자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전자의 설립 초기인 1980년 주당 1000원 정도 가격으로 지분을 인수했다. 원가기준으로 현재 총자산의 0.18% 수준이다. 이걸 시세로 바꾸면 얘기가 다르다. 전자의 비약적 성장으로 주식가치는 50배 이상 뛰었다. 지분가치는 삼성생명 자산의 10%에 육박한다.
결국 삼성생명의 자산 3%를 초과하는 전자 지분을 대량으로 처분해야 한다. 삼성화재 지분을 합치면 매각 규모는 20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걸 누가 살 수 있는가? 삼성이 경영권을 지키려면 물산 등 계열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팔거나 해서 인수해야 하지만 지주회사법 등의 제약으로 현실성이 없다. 외국인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는 최악이다. 지금도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헤지펀드인 블랙록의 5.0%를 포함해 56% 수준이다. 막대한 배당금 지출에 따른 국부유출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들이 연합해 경영권을 위협해도 방어가 불가능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집요한 공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가 될 공산도 크다. 정부가 단 한 주의 주식도 갖지 않는데 최고경영자(CEO) 인사 등이 정권 입맛대로 좌우되는 KT나 포스코 같은 주인 없는 기업으로 만드는 시나리오 그대로다. 보험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한국의 최우량 기업인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는 것 말고 보험사의 더 나은 자산운용이 또 어디에 있나.
이게 보험업법 개정안의 실체다. 삼성 지배구조를 허물기 위한 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9대,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내놓았다가 무산된 후 이번에 반드시 관철할 기세다. 막을 방법이 이번에는 없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수출의 20% 이상을 홀로 감당한다. 제조업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떠맡고, 주식시장 시가총액 비중은 30%대다. 대한민국 법인세의 20% 정도를 책임지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이 이어지지만 정답은 없다. 더 나은 기업성과를 목표로 한다면, 좋은 경영실적을 내는 것이 최선의 지배구조다. 어떤 지배구조를 갖든 기업이 미래를 위해 자율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영역이다. 국가권력이 하나의 잣대로, 편향된 이념적 접근으로 강제하는 건 정말 위험하다. 삼성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일궈낸 경이적 성공이 지금 오히려 족쇄이자 저주(咀呪)의 대상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이 자해(自害)행위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