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사업계획이요? 캄캄한 밤일 뿐이죠. 환율 등 경제지표들이 널뛰듯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획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세계금융시장 불안과 실물경제 악화로 기업들이 내년 사업계획이 '얼개'조차 맞추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급변동하는 환율 뿐만 아니라 유가, 금리 등 불확실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 쯤 이미 다음해 사업계획안이 확정됐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 악화로 인해 불확실한 변수가 쌓인 탓에 아직 상당수가 사업계획 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주요 기업의 설비투자 계획과 인수·합병(M&A) 전략 모두 내년 초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기업들은 내년 투자계획에 손도 대지 못해 고용 규모와 생산시설 가동계획, 사업 부문별 매출 목표 책정이 연쇄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사업계획의 기본 지표인 환율조차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업계는 일단 내년 환율을 950~1100원대로 잡았다. 유가 역시 배럴당 70~90달러대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년과 다르게 범위가 넓다. 그만큼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계획을 확정하기 위해선 자금조달 창구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하지만 금융권에서 대출금을 회수하는 등 오히려 경영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금융권과 연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의 경우 당분간 투자계획 수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실물경제 악화도 기업들의 사업계획 수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 반도체, LCD(액정표시장치), 자동차 등 수출주력 업종의 수출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실물경제 동반 침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예산부터 시작해 내년 계획을 짜는 것이 쉽지 않다"며 "솔직히 12월 중순쯤 돼야 어느정도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내년으로 사업계획 확정을 미루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올해는 상황이 어렵다"며 "확정된 계획이 내년에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탄력적으로 사업계획을 짜는 일이다. 환율, 유가, 금리 등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사업계획을 확정하는데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내년 사업계획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기 보다는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