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슬기로운 의사생활, 슬기로운 환자생활

입력 2020-09-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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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살면서 요즘처럼 자주 병원을 들락거린 때도 없었다. 올 초 갑작스런(?) 조직 생활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로 결국 몸에 탈이 났다. 이명에 이어 이름도 생소한 메니에르병이라는 진단까지 받아 약을 입에 달고 살게 된 것이다.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한 나에게 누군가 꽤 볼 만한 드라마가 있으니 한번 봐 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얘기다.

드라마 속의 병원 수술 장면만 봐도 괜한 피로감이 밀려왔지만, 그래 1편만 보고 판단해 보자고 시작하여 그만 최종 12부까지 정주행하고 말았다. 누가 드라마를 썼나 봤더니 그럼 그렇지, 나의 최애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우정 작가와 신현균 피디의 작품이었다.

이우정 작가는 이력이 독특하다. 김수현 작가처럼 정통 드라마 작가로 시작하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히트작을 낸 뒤 드라마로 넘어온 특이한 케이스다. 작품도 혼자 쓰지 않고 작가들과 협업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구성 방식을 드라마로 가져온 것이다.

▲슬의생
▲슬의생
이우정표 드라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실없이 웃기다가 그 웃음을 눈물로 바꿔 주는 기술이 탁월하다. 퍼즐처럼 흩어진 조각들을 극의 흐름과 함께 세밀하게 짜 맞춰 마지막에 감동을 배가한다. 그녀의 작품엔 빌런이 존재하지 않는다. 얌체 같고 이기적인 캐릭터는 있지만 찐 악당은 아니다. 오히려 극의 막바지에 이런 사람도 선한 영향력 안으로 포용하는데, 이는 극적 훈훈함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우정 작가의 또 하나 탁월한 점은 시대적 특징을 드러내는 음악을 극 상황과 조응하여 똑 떨어지게 배치한다는 점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아쉽게도 12부작으로 끝나 다른 미니시리즈보다 짧다. 등장하는 의사들은 마치 ‘히포크라테스의 현신’처럼 보여 어떤 장면은 현실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내가 접하는 의사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작금의 일부 의사들의 모습과도 많은 괴리가 있다. ‘슬기로운 의사’들을 만나지 못할 바에 우리는 이제 ‘슬기로운 환자’로 거듭나야 한다. 슬기로운 환자 생활이라 해봐야 제 몸 건강 알뜰히 챙기는 일이겠지만. 물론 ‘슬기로운 환자’ 생활은 피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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