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하) 창작자 쏙 뺀 웹툰계약… 그렇게 난 ‘미생’이 됐다

입력 2020-09-28 18:22 수정 2020-09-2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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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A 씨는 연재 중 겪었던 황당한 일을 이야기했다. 작가의 동의 없이 정산서 내용이 바뀌었던, 기막히는 일이었다. 웹툰 에이전시에 관련 내용을 문의하자 ‘MG(미니멈 개런티)’, ‘계약금’, ‘선인세’ 등 법적 근거가 미비한 관행적 업계 용어를 뒤섞어 회사 측에 유리한 해석을 내놓았다.

A 씨는 이 같은 상황이 불공정계약에 해당하지 않는지 변호사에게 자문했다. “부당행위가 명백하지만 (해당 업체의) 시장 영향력이 너무 커 구조적 갑질에 작가 개인이 대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후 업계에서의 활동 및 계약에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에이전시 사태는 플랫폼과 작가 사이에 에이전시의 직간접적 이중계약 등의 문제가 엮여 있는 만큼 ‘법적 해석으로든 이해관계로든 작가와 플랫폼의 직계약 건보다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라는 진단이 덧붙여졌다.

◇웹툰시장 커지자 생긴 에이전시...불공정 계약 논란

웹툰 에이전시는 작가로부터 저작권을 위임받아 웹툰 플랫폼과 연재 계약을 대리한다. 글·그림 작가가 필요한 경우 둘을 연결하거나, 특정 플랫폼에 진출하고자 하는 작가들에게 관련 컨설팅을 제공한다. 몇몇 에이전시는 작가가 요청한 작품에 대한 프로듀싱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웹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툰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재담미디어, 투유드림, 투니드엔터테인먼트 등 80여 개의 웹툰 에이전시가 등록돼 있다.

웹툰 플랫폼 관계자는 “대부분 CP나 에이전시를 통해 소속 작가들과 계약한다”며 “웹툰산업이 커감에 따라 작업이 분업화하고 작가들도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이점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지 관계자는 “초기 웹툰 산업에는 유료 모델이 없어 작가들이 수익을 가져가기 어려웠다”며 “에이전시 체제가 들어오고 여러 지원책이 안착함에 따라 작가들의 권익이 보호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웹툰 플랫폼이 경쟁력 있는 에이전시와 계약, 안정적으로 작품성이 보장된 콘텐츠를 수급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도 수두룩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공정 계약 경험률은 52.2%이며, 에이전시와의 문제(갈등)로 인한 계약 해지 비율은 22.8%에 달한다.

이들 작가는 플랫폼과 작가 사이에 에이전시가 들어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과거 에이전시를 통해 연재했던 웹툰 작가 B 씨는 “작품 관련해 갈등이 생겨 플랫폼에 항의하니 ‘(작가는) 본인들이 계약 당사자가 아닌데 왜 따지냐’는 말을 하더라”고 했다.

에이전시와 플랫폼 양측에서 자신들에겐 사실상 책임이 없다며 서로에게 미루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투데이와 만난 작가들은 작품 관련 정보를 열람하고 싶어 데이터를 요청했지만, 계약상 제3자인 작가에게 내부 정보를 유출할 수 없어 거절당했다고 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헬스데스크’에서 작가들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김필성 변호사는 “전체 수익이 얼마가 발생했고 수수료를 얼마나 뗐는지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플랫폼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다며 여기저기 작가들을 노예처럼 끌고 다니는 에이전시도 있다”고 지적했다.

성상민 만화·문화평론가는 “관리를 잘해주는 에이전시도 있겠지만, 일부 웹툰 플랫폼의 경우 작가의 선택권 없이 무조건 업체를 통해야만 계약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에이전시를 끼지 않고서는 작가들이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이 곧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원고료로 받는 MG, 스타작가 빼고는 ‘빚’만 쌓이는 구조...지급된 MG만큼 수익 안나면 작가들이 갚아야

웹툰 작가들은 “기초생활을 보장한다”며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지급하는 MG가 오히려 빚이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MG는 원고료를 대신하는 개념이다. 플랫폼이나 에이전시가 웹툰 회차별 일정금액을 작가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회차별 MG, 월 MG 등 계약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원고의 대가라는 기본 개념은 같다.

억대 수익을 올리는 일부 작가들을 제외하면 웹툰 작가들의 주 소득원은 MG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2019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 64.7%가 “주 소득원이 MG”라고 응답했다.

웹툰 플랫폼과 에이전시 측은 MG를 지급하는 것이 작가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에이전시 관계자는 “대형 플랫폼의 경우 인기 순위 상단에 있는 작품들이 아래 작품들을 다 커버하고 있다”며 “MG를 받는 게 더 나은 작가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성상민 만화·문화평론가는 “MG는 언뜻 보면 작품의 인기가 없어도 원고료를 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유료 수익을 배분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플랫폼이 지급한 MG만큼, 혹은 그 이상을 다시 가져가겠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 제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MG가 작가들의 수익을 보장할까. 웹툰 작가들은 대부분 ‘누적 MG’ 형태로 계약을 맺고 있다. 지급된 MG만큼 작품에서 유료 수익이 나지 않으면 그 차액이 다음 회차로 이월돼 작가들이 갚아야 할 돈으로 남는 제도다. 작가가 회차당 50만 원의 MG를 받고 작품을 제작했을 때, 해당 회차에서 유료 수익이 25만 원이 생겼다면 차액 25만 원을 다음 회차에 계속해서 갚아나가야 한다.

지급된 MG만큼의 유료 수익이 나도 작가들에게 실제로 돌아오는 돈은 훨씬 적다. 플랫폼이 총매출에서 평균 30%의 수수료를 먼저 떼가기 때문이다.

누적 MG로 연재한 경험이 있는 작가 A 씨는 “누적 MG를 다 갚으려면 웹툰 완결 후 3년은 묵혀야 한다”고 토로했다.

성인물을 연재했다는 작가 B 씨도 “(해당 작품은) 유료 결제가 많아 매출이 잘 나왔는데 연재하는 동안 한 번도 인센티브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며 “플랫폼은 총매출에서 수수료를 떼가는데, 수수료를 먼저 뗀 순매출에서 MG를 차감한다는 답을 받아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지 관계자는 “고료, MG와 관련해 플랫폼별로 계약방식이 다르다”며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기본 기조”라고 했다.

다른 웹툰 플랫폼 업체들도 “계약 내용은 극비에 해당하고 작가나 장르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는 연재 시 원고료를 무조건 기본으로 제공한다”며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유료 콘텐츠·광고·IP 비즈니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MG 대신 원고료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복잡한 방식으로 작가들에게 빚을 안기기보다 원고료를 책정하고 유료 수익을 따로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희경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지회장은 “누적 MG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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