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위기의 포퓰리스트...코로나19에 드러난 민낯

입력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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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을 넘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 거의 1년.

그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과 그로 인한 경기 침체, 생활고가 서민들을 공포로 내몰면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공포를 빌미로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영악한 셈법이 작용한 것이지만,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 앞에선 얄팍한 포퓰리즘도 통하지 않았다. 인기만을 좇아 대응책을 모색하다 보니 감염자와 사망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었고, 결국 포퓰리스트 정치의 민낯만 드러냈다.

미국, 인도, 멕시코, 영국, 브라질. 이들 국가의 공통점도 바로 포퓰리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문가 집단의 권고를 무시하고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등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를 펼쳤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코로나19에 대해 1월에만 두 차례나 위험성을 보고했지만 “곧 지나갈 문제”라며 사실상 묵살했다. 보건전문가들이 올해 1월부터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폐렴이 매우 심각하다며 우려를 나타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재선에 악영향을 우려해 파란의 싹을 아예 자른 것이다. 9월 15일 출간된 밥 우드워드 미국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의 신간 ‘격노’에 그의 이런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일찍부터 인지하고도 일부러 축소했다고 폭로했다. 올해 1월 말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독감보다 5배나 위험하고,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국민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로 함구한 것이다. 미국에서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표된 건 2월 29일. 당시는 미국에서 코로나19가 그다지 확산하지 않은 때였는데, 선제 대응만 잘 했어도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까지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결국 트럼프 자신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코로나19를 ‘경미한 독감’에 비유하며 마스크 착용이나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필요성을 외면했다. 친정부 집회에 ‘노(No) 마스크’로 참석해 보란 듯이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고 돌아다녔다. 또 경제 봉쇄에 따른 비용이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보다 더 크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입증도 안 된 말라리아 방지 약물을 홍보하면서 코로나19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늘어났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미주간 대화(IAD)’의 마이클 쉬프터 회장은 “보건 위기 문제 해결에는 전문지식과 과학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본질적으로 경시하는 포퓰리즘 정치학이 문제를 해결할 합리적인 정책의 실행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이들 포퓰리스트가 다음과 같은 성향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첫째는 감염병 관련 확증된 사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 것이고, 둘째는 집에 머물라거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라는 등의 권고 사항을 무시한 것, 셋째는 자국민 간 분열을 조장한 것, 넷째는 전문가 집단이 제시한 해법보다 허풍에 가까운 말들로 지지층에 호소했다는 점이다.

토머스 라이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팬데믹과 그에 따른 처참한 경제 붕괴는 무능의 대가”라면서 “감염병이 포퓰리즘의 사각지대를 제대로 가격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코로나19가 남긴 상흔은 그야말로 포퓰리즘이 부른 비극으로, 포퓰리스트가 정권을 잡은 불행한 시기에 감염병이 닥친 게 인류의 불운이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이 판을 친 국가들의 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칠쳤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1분기 마이너스(-)5%로 6년 만에 첫 역성장한 데 이어 2분기에는 1947년 통계작성 이후 최악인 -31.7%를 기록했다.

영국도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20.4% 감소하며 11년 만에 공식적인 경기침체에 돌입했다. 멕시코와 브라질의 2분기 경제성장률도 각각 전 분기 대비 -17.3%, -10.9%를 기록,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정치 세계에서 국제사회 협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점도 파국을 키웠다. 마치 내셔널리즘이 득세하던 1930년대 초, 많은 국가들이 ‘근린궁핍화정책(다른 국가의 경제를 궁핍하게 만들면서 자국의 경기 회복을 꾀하는 정책)’을 추구하던 것과 비슷하다. 당시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세계를 대공황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악법으로 꼽힌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가 위기를 안정시키기는커녕 악화시킨 주범이었던 것이다.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받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번 사건은 사실을 부정하는 포퓰리즘의 한계를 보여준다”면서 “거짓말과 허위로 팬데믹에 맞설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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