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태국 방콕에서 미국이 독일로 향하던 마스크 20만 장을 웃돈을 주고 빼돌리는 ‘해적질’을 벌였다.
# ‘한국사위’로 유명한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는 4월 한국으로부터 코로나19 진단키트 50만 개를 수입하면서 미국 연방정부가 가로챌 것을 두려워해 주방위군을 동원해야 했다.
# 중국이 코로나19를 틈 타 남중국해에서 훈련을 확대하는 등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이 사례들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극도의 혼란에 빠진 가운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실한 리더십과 연대가 사라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옛 소련 공산당의 위협에 맞서 대규모 원조인 ‘마셜 플랜’을 실시해 유럽을 구했던 미국의 리더십은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치하에서, 특히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완전히 실종됐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를 위기에서 구하기는커녕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배출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코로나19 진원지인 중국도 ‘리더십의 부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홍콩 중문대학 중국연구센터의 윌리 람 교수는 “코로나19에 대한 서투른 대응으로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은 공산당 일당 체제의 두 가지 핵심 약점을 드러냈다”며 “하나는 하급 관리에서 시 주석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경력을 훼손할까 봐 나쁜 소식 전달을 꺼리는 투명성 부족이다. 두 번째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급속한 경제 성장에만 의존하는 취약성”이라고 지적했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유럽연합(EU)의 결속을 이끌었던 독일의 리더십도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전염병을 비교적 잘 억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EU 최강국의 수장으로서 전반적인 대응을 주도하기보다는 자국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기에 급급하다.
영국은 코로나19에 대한 허술한 대응으로 보리스 존슨 총리마저 감염돼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리더십을 거론하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등 어설픈 대책으로 자국의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신흥국 지도자들도 무능하기 그지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 등 과거 전 세계 리더들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구축하고, 유엔 설립을 위한 계획을 가다듬는 등 평화를 설계했다”며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속에 미국의 리더십 공백과 각국의 포퓰리즘으로 ‘무질서한 신세계(New World Disorder)’가 도래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리스크 평가 전문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글로벌 대응이 전혀 없는 우리 생애의 가장 큰 글로벌 위기”라며 “트럼프의 일방주의, 동맹국과의 불편한 관계 등이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덴버대학교 국제대학원의 자오수이성(趙穗生) 교수는 “미국이 100년여 만에 처음으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은 첫 글로벌 위기”라며 “중국도 미국이 남긴 정치적 공백만을 전술적으로 이용하고, 말로만 글로벌 연대를 부르짖을 뿐 불량 마스크를 수출하는 등 행동은 달랐다”고 비판했다. 이어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가 아무도 없는 ‘G제로’ 시대의 도래 속에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으면서 국제적 협력과 연대를 사라지게 했다”며 “미·중 긴장은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설립된 각국 정부와 국제기관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오작동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7월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를 공식 통보하고, 9월에는 WHO에 내기로 한 분담금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