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늬만 재정준칙, 건전성 기대할 수 있겠나

입력 2020-10-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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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5일 재정준칙을 발표했다. 지난달 나올 예정이었으나 ‘유연성이 강조된 준칙’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면서 여당의 반대로 미뤄졌다. 예상대로 기준이 느슨하고 실효성도 떨어지는 준칙이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3% 이내에서 관리키로 하고, 적용 시점을 2025년으로 제시했다. 또 올해의 코로나19 사태 같은 경제위기나 전쟁, 대규모 재해 상황에서는 적용에 예외를 두기로 했다. 이에 따른 채무비율 증가분은 다음 3개년에 걸쳐 25%씩 점진적으로 준칙의 기준으로 복귀하도록 했다. 재정적자 등의 한도도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위임해 5년마다 재검토한다. 의무적 재정지출 법률을 만들 때 재원조달 방안을 함께 명시해야 하는 페이고(Pay-Go)원칙도 후퇴했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등의 한도를 일정 수준에서 관리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지켜야 할 규범이다. 법으로 규정되고 강제성 있는 적용의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이는 국가신인도와 직결된다. 부채증가의 부담이 별로 없는 선진국을 비롯,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터키를 제외한 34개국이 도입하고 있다. 우리도 오래전부터 준칙의 법제화 요구가 많았다. 코로나19에 따른 올해 4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준칙 도입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러나 이번에 제시된 재정준칙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국가채무비율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3%라는 기준 자체가 너무 약한 데다, 적용 예외와 기준 완화의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시행시기도 문재인 정부가 지나간 2025년부터이고, 관리 한도도 5년마다 바꿀 수 있다. 고무줄 잣대로 확장재정을 계속 용인하는 ‘무늬만’ 재정준칙이다.

올해처럼 재난이 닥친 상황에서 확장재정으로 대응해야 하는 중요성은 물론 크다. 일시적으로 국가채무를 늘려서라도 급한 불을 꺼야 한다. 재난으로 생계가 위태로워진 취약계층을 구제하고 한계상황의 기업을 지원해 경제시스템 붕괴를 막는 것이 재정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럴수록 예외는 엄격해야 한다. 나라재정은 벌써 적신호가 켜져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 때만 해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로 삼았던 건전성의 마지노선은 이미 무너졌다. 정부의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4차례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846조9000억 원, GDP 대비 채무비율은 43.9%로 올라간다. 2022년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넘고, GDP 비율도 50.9%에 이른다. 2024년 이 비율이 59%에 이를 전망이다. 채무증가와 재정건전성 악화는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있으나 마나 한 재정준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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