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그린스완의 해법]①“기후 위기, 금융 위기로 돌아온다”

입력 2020-10-14 13:56 수정 2020-10-1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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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나 보험, 증권사를 선택할 때 우리는 대개 금리, 수수료, 보장성 등을 우선 살핀다. 그러나 최근 시민사회는 ‘한 가지’ 더 따져보기 시작했다. 기후 위기를 앞당기고 지구를 파괴하는 금융기관인지 말이다.

금융과 환경은 관계없는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발전소 건설, 석유 채굴 같은 사업인 경우, 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없이 성사되기 힘들다. 보험사와 증권사 역시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보험 및 투자(대체투자)에 나서고 있다.

‘블랙스완’ 보다 위험한 경고, ‘그린스완’이 온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기나긴 장마도 겪었다. 미국 서부와 호주에선 초대형 산불이 잦았다. 시베리아 북극권은 40도까지 오르면서 절절 끓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일상의 위협을 느끼자 ‘그린스완(green swan)’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린스완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경제·금융 위기를 뜻한다. 올해 초, 국제결제은행(BIS)이 발간한 보고서에 처음 등장했다.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남을 일컫는 ‘블랙스완’에서 ‘기후위기’를 추가한 개념이다. 기후 변화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는 블랙스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경고의 의미다.

기후위기 시대에서 석탄산업은 한계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탈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각국 정부는 석탄산업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규제 정책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서 석탄 산업이 경제성이 없는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배경이다.

이에 금융 전문가는 기후 위기를 ‘환경’이 아닌 ‘경제(금융)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재해가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고, 이런 피해가 보험ㆍ대출ㆍ투자 등 금융 기관에 쌓이면 금융위기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후위기, 어떤 경로로 금융시장 흔들까

▲올해 중부지방 장마는 54일 동안 지속되면서 최장기간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8월, 집중호우로 수문을 열고 방류 중인 경기도 하남시 팔당댐에서 시민들이 흙탕물이 쏟아져나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올해 중부지방 장마는 54일 동안 지속되면서 최장기간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8월, 집중호우로 수문을 열고 방류 중인 경기도 하남시 팔당댐에서 시민들이 흙탕물이 쏟아져나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실제 FSB(금융안정위원회), IMF(국제통화기금)와 BIS(국제결제은행) 등 국제기구들은 기후위기가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BIS는 “기후와 관련된 위기들이 생산성과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 실질 이자율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며 통화정책의 주요 고려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보험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호흡기 질환자가 늘어나면서 보험금 지급 규모도 증가한다.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 기관지염 입원 환자는 23%, 만성폐쇄성 폐 질환 외래환자는 10% 늘어난다.

폭우로 침수된 자동차가 많아져도 자동차 손해보험의 손해율이 높아진다. 지난 8월, 4대 손해보험사가 집계한 침수 차량은 7036대다. 2018년 275대, 2019년 443대보다 압도적인 규모다. 손해추정액도 707억 원으로 지난해 24억 원의 30배에 달한다.

또한, 폭염으로 농산물에 피해가 생기면 농·식품산업 분야에선 대출·보증·융자 등 상환이 늦어지고, 은행 재무 건전성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도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지난 22일, 금융감독원은 기후변화에 대해 대응하지 못한다면 2028년 국내 은행들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최저 4.7%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황재학 금감원 선임조사역은 “물론 4.7%라는 수치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라면서도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경제가 점차 경기침체에 빠져 BIS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지표가 나빠지면서 어려운 시기에 돌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금융권과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11.7%로 안정적인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탈석탄 비즈니스 모델을 촉구했다.

한편, 루이즈 아와즈 페레이라 다 실바 BIS 부총재는 “코로나19에 따른 위기 역시 그린스완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염병인 코로나19는 급격한 생태계 변화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이에 경제활동을 계산할 때 ‘자연 자본’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지구 뜨겁게 하지 마라”...한국은 어떻게 준비하나
각국 중앙은행들은 기후변화를 경제 문제로 인식하면서 대안 마련에 분주하다.

영국은 가장 적극적인 나라로 꼽힌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최근 자국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평가)에 기후변화 관련 위험성을 측정하는 항목을 추가했다. 금융기관이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7년 12월, 영란은행 주도로 ‘녹색금융협의체(NGFS)’가 출범했다. NGFS는 중앙은행 및 감독기구의 기후·환경 리스크와 녹색 금융 관련 작업 촉진을 위해 설립된 자발적 논의체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은행이 작년 11월에 가입했다.

▲지난 8월,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서울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지난 8월,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서울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

국내에도 ‘탈석탄’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 IPCC 총회를 기점으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이 탈석탄 선언을 하면서 물꼬를 텄다. 지난해에는 DB손해보험·한국교직원공제회·행정공제회가 선언했다.

KB금융지주는 국내 금융그룹 처음으로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관련된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채권인수 사업 참여를 전면 중단했다. 연기금도 탈석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를 활용한 사회책임투자가 늘고 있다.

또한,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지지 선언도 잇따랐다. 지난 5월 환경부는 우리나라 정부 기관 최초로 선언했다. 지난 2015년 설립된 TCFD는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의 요청으로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만든 조직이다. 민간기관인 신한금융, KB금융 등 7개 기관이 지지를 선언했고, 올해 3월 국내 제조업체 중에선 포스코가 처음으로 지지했다.

금융 당국도 기후금융을 시작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TCFD 지지’와 ‘NGFS 가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8월, 금융위원회 주재로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 첫 회의도 열렸다. 향후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감독 모니터링 체계 구축하고, 기업의 환경 관련 정보공시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기후변화 리스크가 현재화되는 시점과 영향의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는 일인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TF를 통한 논의를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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