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기업 3법’과 지배구조 개혁

입력 2020-10-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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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현재 국회에서 입법 처리되고 있는 ‘기업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을 놓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법규를 부르는 명칭도 입장에 따라 다르다. 찬성론자들은 ‘공정경제 3법’이라 부르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기업규제 3법’이라 칭한다. ‘기업 3법’이 공정한 경제질서를 확립할 것이라는 주장과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충돌한다. 그만큼 우리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며 상반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런 논란에서 기업과 기업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독특하게 기업주(오너, 총수, 대주주라 불림) 일가가 지배하는 족벌경영의 체제를 갖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세칭 ‘재벌’에 의한 가족경영이 한국 기업의 고질적 병폐의 근본 뿌리이다.

경영학에서 오너 경영과 전문가 경영은 각각 장단점이 있으며 오너 경영이 유효한 상황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어느 경영학 학자도 경영권을 대물림하며 족벌 경영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테크기업들도 대주주가 경영한다는 예를 들어 왜 우리나라는 대주주 경영을 매도하며 규제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들은 창업가인 대주주가 경영하는 것이지 자손 대대로 세습하며 경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 대기업의 1세는 창업가로, 2세는 동역자로 기업을 일구고 성장시키며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경제적 공헌을 인정받아 대기업의 족벌경영이 허용됐고 편법과 비리가 있어도 관용으로 대해졌다. 그러나 이제 대기업 경영권이 3~4세로 세습되는 시대는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3세 경영자는 본인의 능력이나 성취와 상관없이 누구에게 태어났느냐 하는 혈연만으로 거대한 기업을 물려받고 경영을 책임진다. 이런 초보 경영자에 의한 오너 리스크가 크게 증대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마디로 미숙한 운전자가 대형트럭을 모는 것과 같다. 필연적으로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오너 경영의 장점으로 대규모 투자 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꼽는다. 하지만 대주주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대형투자는 기업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은 대부분 실패해 ‘승자의 저주’라는 딱지가 붙는다. 대대적 투자가 필요한 M&A가 실패하는 이유는 총수의 독단적 결정이 견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실패를 대주주가 책임지고 물러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임직원은 조금만 잘못해도 책임지고 회사를 떠나는데 대주주는 어떤 잘못에서도 자유로운 성역에 속한다. 미국의 수소차 회사인 니콜라가 사기로 의심되며 이에 투자한 국내 대기업의 주가도 춤추고 있는 와중에 니콜라 투자를 주도한 약관의 3세 경영자는 사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무한 혜택에 유한 책임이 대주주 경영자의 특권이다.

이런 경영권을 놓고 후손 간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다. 흔히 ‘형제의 난’이라 불리는 홍역을 안 치른 대기업이 드물다. 인성이 부족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한항공 3남매가 경영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가족 간 경영권 쟁탈전은 사내 정치가 판을 치게 해 기업의 건강성을 저해한다. 임직원들은 눈치 보고 줄서기 바쁘며 원칙보다 변칙, 준법보다 편법에 의존해 충성심을 입증해야 유능한 임원으로 인정받는다.

형제간에 싸움이 나지 않게 하려면 계열회사를 하나씩 나눠 줘야 한다. 그러다 보니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된다. 3~4세로 넘어가면 먹여 살려야 하는 직계, 방계가 수십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배구조에서 기업은 총수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고 증식시키며 승계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가 끊이지 않으며 상생 협력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근본적 원인은 전근대적 지배구조에 있다. 갑질 논란이 불거진 회사치고 오너 일가의 비위가 문제 되지 않는 회사가 없다.

과연 이런 지배구조의 문제를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 왔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기업 3법’을 반대하는 논리는 예전과 변함없다. “기업의 자율경영을 보장해 달라”, “경영권 방어에 자금이 투입되면 투자를 못 한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기업활동을 더욱 옥죄는 규제를 남발하느냐”라는 주장만 무성하다. 대기업이 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이만큼 노력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목소리는 전혀 없다.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무력화돼 대주주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관투자가도 대기업 계열사나 거래기업이므로 감시자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로펌과 관피아는 재벌의 울타리로 보호막 역할을 한다. 결국, 시장의 논리로 자유롭게 경영권의 허점을 공격할 수 있는 투자가가 외국계 펀드인 것이다.

‘기업 3법’이 시행되면 외국 투기자본이 단기 차익을 위해 경영권 안정을 흔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투기적 자본이 파고드는 것은 족벌경영의 틈을 노린 것이다. 글로벌 기업도 조금만 허점을 보이면 공격 대상이 된다.

이제 우리 기업의 역사가 50~60년에 이르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족벌경영의 적폐가 누적돼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대기업들은 ‘기업 3법’이라는 규제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는 내부 병폐를 깊이 인식하고 앞으로 더 큰 규제가 오기 전에 자체적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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