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헌의 왁자지껄] 현대판 연좌제 강행하는 정부

입력 2020-10-1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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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부 차장

#친가·외가 조부모, 부모, 배우자, 자녀, 손자 보유 주식까지 포함해 대주주 기준을 3억 원으로 삼는 것은 현대판 연좌제로 위헌입니다. 대주주 양도세 또한 개인별 보유주식을 기준으로 해야 합당합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대주주 양도소득세는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악법입니다’란 제목으로 올라온 글의 한 대목이다. 이 글은 대주주 양도소득세 산출 방식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해 21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현행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강화하는 소득세법 시행령(내년 4월부터 시행 예정)을 두고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당정도 엇갈리는 목소리를 내며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주식 한 종목당 보유 금액이 10억 원 이상일 경우 ‘대주주’로 규정해 양도차익에 22~33%(지방세 포함)를 부과하고 있지만 이 법이 시행될 경우 ‘대주주’ 여부를 판단하는 주식 보유액 기준이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아진다.

올해 연말 기준으로 대주주가 내년 4월 이후 해당 종목을 팔아 수익을 낼 경우 22~33%의 양도세(지방세 포함)를 내야 한다. 이때 대주주 요건은 가족 합산 원칙이다. 친가·외가 조부모, 부모, 자녀, 손자·손녀 등 직계존비속과 배우자 등이 보유한 물량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투자자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특수관계인이 되는 직계 존비속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점이다. 자손이 많은 가정의 경우 대상이 10여 명을 넘어서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무리 가족이라 하지만 같이 살지 않는 손자, 손녀들이 투자하는 종목까지 알고 있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예를 들어 내가 삼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삼성전자 주식을 3억 원 이상 가지고 있을 경우 예기치 않은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정부가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어긋난다. 일본, 독일 등 일부 나라에서 지분율로 세금을 부과하는 사례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시가 기준으로 대주주 기준을 설정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도 각자 세율에 따라 주식 양도소득에 세금을 부과할 뿐이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도 다른 의견을 내면서 혼란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은 시행 유예나 기준 완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완강히 버티면서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모양새다. 결국, 여론에 못 이겨 연말까지 상황을 지켜보다가 일부 완화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지만, 이 경우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불가피하다. 사사건건 대통령이 나서서 증시를 좌우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의 고집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어렵게 맞은 증시 호황을 날려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시장의 우려만 커지고 있다. 그러잖아도 국내 증시에서는 연말마다 대주주 요건을 피하기 위한 매도 행렬이 이어지면서 내림세를 면치 못한 바 있다. 실제로 코스피의 경우 개인투자자들은 2008년 이후 12년 연속으로 12월에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한 번 온 기회를 차 버리기는 쉽지만, 다시 만들기는 어렵다. 오랜만에 온 증시 호황을 차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car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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