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암매장' 형제복지원 사건 31년 만에 다시 재판…"과오 바로잡아야"

입력 2020-10-1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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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변호인 "피해자들 평생 고통"…무죄 부문 파기해야
가해자 최종 판결 뒤집히지는 않지만 피해자들 회복에 도움

▲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모씨의 특수감금 등 혐의 비상상고 사건에 대한 공판기일을 마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모씨의 특수감금 등 혐의 비상상고 사건에 대한 공판기일을 마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1987년 형제복지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는 좌절됐지만 2020년 현재 어떻게 기억하고 규명하는가에 따라 고통이 완화되고 치유될 수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5일 형제복지원 원장 고(故) 박인근 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형제복지원 피해자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유해정 활동가의 글을 인용해 이같이 재판부에 호소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 3000여 명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 구타, 학대, 성폭행을 자행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복지원 자체 기록만으로도 513명이 사망했다.

박 씨는 1987년 업무상횡령,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됐으나 업무상횡령만 유죄가 인정돼 1989년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31년 만에 다시 열린 재판에서 박 변호사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견뎌온 지난 세월, 고통의 무게를 고려해달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피해자 여전히 고통…박인근, 법인 바꿔가며 먹고살아"

박 변호사는 “1987년 5월 말 형제복지원이 폐쇄되면서 3000명이 넘는 수용자들은 어떠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며 “일부는 여전히 갇혔고 새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구타에 시달리다 사망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당시 ‘형제복지원에서 풀려난 이들로 인해 부산 일대가 부랑인의 소굴이 됐다’는 부정적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전했다. 또 박 씨에게 다시 잡혀갈 수 있다는 공포도 피해자들이 몸을 숨기는 이유가 됐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출소한 박인근은 1992년 12월 다시 대표로 복귀했고, 법인 이름을 바꿔가며 한동안 사회복지 시설로 먹고살았다”고 설명했다.

"바로잡을 수단은 비상상고뿐…'동일한 과오의 방지' 의미 찾아야"

박 변호사는 후유증과 기억, 원망, 원통, 의심, 죄책감, 이용, 자위, 이해, 보상, 자부심 등 단어와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피해자들이 수십 년째 겪고 있는 트라우마,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게끔 하는 힘"이라고 정리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겪어온 아픔을 재판부에 전한 박 변호사는 “대법관의 직무를 시작하면서 하신 말씀대로 이 사건 속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픔에 공감해달라”고 호소했다.

박 변호사는 "긴급조치 관련 사건은 바로잡히고 내무부 훈령 410조 관련 사건은 그대로 둔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잘못된 무죄판결은 불이익 재심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은 비상상고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시설수용과 인간적인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동일한 과오의 방지'라는 비상상고의 의미는 여기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특수감금 무죄 파기해달라…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이날 공판에 참석한 고경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피해자들에 대한 감금이 정당행위가 아니었음을 명확하게 선고해 피해자였음을 천명하고 수사와 재판상의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한 조치일 것”이라며 “특수감금 무죄에 대한 부분을 파기해 주시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사건은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사회적, 시대적 아픔이 있는 사건”이라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판결 파기되도 '박인근 무죄' 효력 없어…피해회복엔 도움

형제복지원 사건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지만 검찰의 부실·축소 수사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4월 “무죄 판결의 유일한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위헌·위법성이 명백하다”며 비상상고를 권고했다.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를 받아들여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다.

비상상고는 대법원에서 단심제로 진행된다. 통상적으로 한 차례 공판을 진행한 뒤 추후 기일을 정해 판결을 선고한다. 다만 사건의 복잡성에 비춰 몇 차례 더 공판이 진행된 뒤 결론이 날 수 있다.

대법원이 원판결을 위법하다고 판단하더라도 박 씨의 무죄 판결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형사소송법상 원판결이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경우에만 파기하고 다시 재판하도록 한다. 이 사건의 경우 박 씨가 무죄를 선고받아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황에 해당한다. 다만 파기될 경우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피해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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