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에 메모리 반도체 수익성 기대에 못 미쳐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후발주자들도 바짝 추격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매각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면서 “인텔이 과거 핵심 사업이었으나 갈수록 고전하는 부문을 털어내고 사업 방향을 전환하는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대한 인텔의 고민은 깊었다. 1960년대 말 메모리 반도체 업체로 시작한 인텔은 사업 초기엔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1980년대 급성장하는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며 수익성이 떨어지자 방향을 틀었다. 사업의 핵심을 마이크로 프로세서 등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으로 옮긴 것이다.
성과는 있었지만 수익성 우려를 떨치지는 못했다. 이에 인텔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서서히 발을 뺐다. 지난해 취임한 밥 스완 최고경영자(CEO)가 그 고삐를 당겼다. 작년에 스마트폰용 모뎀 사업을 애플에 매각한 것과 올 1월 차세대 메모리 기술인 ‘3D 크로스포인트(Xpoint)’ 개발을 위한 합작사 지분을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에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매각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인텔이 낸드 플래시 메모리와 저장장치 사업을 SK하이닉스에 매각한 결정적 배경에는 삼성전자라는 ‘넘사벽’이 있다는 게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플래시 메모리에 대한 꾸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세계 시장에서 약 34%를 차지하는 삼성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오죽하면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산자이 메로트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메모리 칩 시장이 수익성을 높이려면 업계가 설비투자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버거운 경쟁이니 메모리 시장에는 그만 들어오라는 것이다.
여기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갈등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였다. 미국이 중국 기술 기업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중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SMIC에까지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관련 반도체 기업들까지 불똥이 튀었다.
인텔이 중국에 있는 유일한 주요 반도체 제조라인인 다롄공장을 SK하이닉스에 넘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 기업들과 거래하려면 미국 상무부에 건별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반도체 업계 특성상 설계와 생산을 별도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처럼 복합적인 이유가 맞물리면서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7월 미국 반도체 소자 제조업체 아날로그디바이시스가 경쟁사인 맥심인티그레이티드를 209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고, 9월에는 엔비디아가 일본 소프트뱅크 산하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홀딩스를 40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AMD는 현재 경쟁사 자일링스 인수를 위해 협상 중이다.
인텔은 중요 사업 하나를 포기한 만큼 기존 주력 사업인 CPU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블룸버그는 “인텔의 과감한 포기는 향후 사업 전반에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국 투자은행 레이먼드제임스는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를 포기할 경우 연간 20억 달러의 잉여현금흐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