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이석준·정수영 "가족의 아픔,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

입력 2020-10-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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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8 '아들'…11월 22일까지

▲연극 '아들'에 출연 중인 배우 이석준(오른쪽)과 정수영이 2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연극 '아들'에 출연 중인 배우 이석준(오른쪽)과 정수영이 2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가족은 이럴 것'이라고 규정짓는 것처럼 무책임한 행동이 있을까. 우리 사회엔 수많은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관계를 유지하지만, 끊어낸다. 이혼과 재혼이라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너무나도 흔한 일이 돼버렸지만 그들의 공통분모인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돌발행동을 하게 되면 비난은 부모의 몫이 된다.

연극 '아들'(연출 민새롬)은 '진실X거짓'을 쓴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최신작이다. 연극 '아버지', '어머니'에 이은 그의 '가족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11월 22일까지 대학로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아들'은 가족의 붕괴와 우울증의 문제를 주목한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들 니콜라(이주승·강승호)는 "살아지지가 않아"라며 울부짖는다. 아빠 피에르(이석준)는 이혼 뒤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니콜라 외에 또 다른 아들을 낳았다. 엄마 안느(정수영)의 노력만으론 이미 해체된 가정 그리고 관계를 회복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최근 배우 이석준과 정수영을 서울 대학로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벌써 10편이 넘는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대학로 대표 절친 배우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아들'을 같은 방향으로 이해하고 있진 않았다. 대학로 작품에선 드물게 원 캐스트(한 배우가 한 배역을 맡는 것)로 '아들'에 임하고 있는 두 사람은 저마다 크고 작은 무게를 지닌 채 '화해', '용서'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중이다.

(사진제공=연극열전)
(사진제공=연극열전)

다음은 두 사람과 일문일답.

- 첫 리딩때 배우들끼리 어떤 공감대, 분위기가 모였나.

이석준 "제가 작품을 읽은 것만큼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많았다. 연극은 합이 중요한데, 이 작품은 심리적으로 긴장감을 꽉 잡고 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작품과는 조금 달랐다.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계속 붙들고 있는 것처럼 살짝만 삐끗해도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긴장감을 느끼고 연습 과정을 걸어왔다. 연습 과정의 3분의 2는 날카로운 모습이었던 것 같다.

정수영 "그래, 너 너무 날카롭더라."(웃음)

이석준 "맞다. 제가 생각한 것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연출한테도 많이 물어봤다. 민새롬 연출이 고집스럽지 않게, 모든 과정에 시간을 들이며 오랜 시간 저를 진중하게 설득해줬다. 덕분에 꽤 많이 납득하게 됐다."

- 이혼한 부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아들'이라는 주제는 연결고리이자 공통된 책임이다. '아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나.

이석준 "딱 '매개체' 그 정도다. 그걸 증폭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걸 관계의 발전에 대한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것을 연출이 경계했다. 아이의 상태와 병의 원인에 처음엔 우리 두 사람이 귀책사유를 갖고 있을 순 있겠지만, 그게 결정적이진 않았으면 좋겠다더라. 누군가에게 책임을 짊어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아이의 우울증은 무의식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일이다. 영화를 보면 이혼한 부부가 재난 상황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갑자기 똘똘 뭉치고 갑자기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정수영 "안느는 피에르의 상태를 살피고 '당신, 내가 그때 정말 좋아했어'라며 과거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시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다시 잘해보자는 것은 아닌 거 같다. 행복을 다시 누리고 싶다는 본능과 아쉬움으로 해석했다."

▲정수영은 "안느가 피에르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행복을 다시 누리고 싶다는 본능과 아쉬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정수영은 "안느가 피에르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행복을 다시 누리고 싶다는 본능과 아쉬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평범하지 않은 우울증에 걸린 아들을 받아들이는 부모 역할이다.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정수영 "부모는 아들에 대해 자신들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은 내가 잘 알아', '지금 잠깐 방황하고 있는 거야'라는 식이다. 하지만 아들을 정말 이해했다면 이런 결말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부모는 객관적인 입장에 놓인 사람보다 더 아들에 대해 모를 수도 있다."

이석준 "사실 니콜라의 상태를 경험했다. 40대가 넘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처음엔 번아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툭 왔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다 보니 무사히 넘어갔지만 주변에서 상태를 눈치채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본인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의사조차도 우울증을 잘못 다뤄서 아이를 잃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원인을 추적해서 이유를 찾고 고치면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저도 궁금하다. 피에르는 니콜라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놓쳤을까. 무슨 잘못이 있었고, 이해했을까? 아마 못했을 것 같다."

- 우울증, 어떻게 극복했나.

이석준 "가만히 있었다. 안 해봤던 게 없다. 차에서만 12시간도 있어 봤다. 차를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대외적으로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다."

▲이석준은 이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과거에 겪었던 아픔을 고백했다. 그는 "누군가한테 십자가를 지울 생각을 하는 게 아닌 다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석준은 이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과거에 겪었던 아픔을 고백했다. 그는 "누군가한테 십자가를 지울 생각을 하는 게 아닌 다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원 캐스트' 힘들지 않나.

이석준 "힘들다. 하지만 더블로 했어도 트리플로 했어도 힘들었을 것이다. 야구선수처럼 며칠에 한 번 등판하는 식으로 루틴이 정해진 게 아니므로 배우는 작품 내내 그 감정을 유지하고 가져가야 한다. 다만 이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어려운 건 텐션을 유지하다 마지막에 감정을 확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스터가 없다. 본질을 피해 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밑바닥에 다른 감정을 유지하며 끌고 가야 한다. 체력적으로 힘들다."

- 작품은 무거운데 굉장히 한국적이다. '애증의 부자', '애증의 모자'가 낯설진 않다.

이석준 "프랑스 작품이 비교적 다른 유럽작품에 비해 꽤 우리 정서와 비슷한 게 많은 것 같다. 프랑스인들도 '한'이 있다. 우리처럼 감정, 색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지 않나. 가족끼리 집착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유럽이든 아시아, 미국이라고 한들 가족의 기본 단위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를까. 우리는 더 서럽게 울 수 있고 좀 더 아들을 대하는 대화톤이 우리다울 순 있겠다. 다만 이 작품을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영혼이 통하는 것과 같다."

정수영 "대본을 영어본, 프랑스본, 한국본 세 개를 놓고 봤다. 연출이 프랑스에 살다 와서 불어도 하고 영어도 한다. 그 덕분에 가능성의 영역이 더 넓어졌다. 더욱 풍부한 언어들을 두고 선택할 수 있었다."

-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도 있다. 안느도, 피에르도 엄마 아빠가 처음이다. 니콜라에 대한 이해가 참 어려웠을 것 같다.

정수영 "많은 부모가 자식이 우울증 걸려서 심정을 토로하면 '네가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구나'라고 바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잠깐 방황하다가 괜찮아질 거로 생각한다. 아이로선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연출은 이 과정을 '스트러글(Struggle)'이라고 했다. 니콜라 본인도 상태가 나아지고 자기의 모든 걸 드러내 보일 수 있을 만큼 괜찮아진 상태가 오기를 기다렸을 거다. 사실 '누가 어떻게 했다면'이라는 해결책 같은 답은 없다."

이석준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괴로웠던 지점이다. 피에르는 나보다 잘한 거 같은데,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재밌게도, 제가 뒤늦은 나이에 힘들었을 때 니콜라의 입장을 경험했다. 우리는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이유를 찾는다. 이혼이 문제인가, 아이가 문제인가라는 식이다. 누군가한테 십자가를 지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피에르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을까."

▲두 사람은 비록 화해하지 못하는 결말을 담고 있지만 '아들'을 통해 위로 받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두 사람은 비록 화해하지 못하는 결말을 담고 있지만 '아들'을 통해 위로 받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화해하지 못한 결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수영 "니콜라의 일방적인 화해일 수도 있다. 우리 인간은 니콜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삶을 짊어지고 가는, '그래도 살아야지'하고 살아간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지금 힘든 일을 겪는 관객들이 위로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석준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답'을 찾는 게 목표다.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죽음과 삶 사이의 경계선을 걸어간다. 미래를 모른 채 불안 불안하게 살아낸다.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로 위안을 받길 바란다. 아픔이 없는 사람에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장이 열린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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