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한진택배 기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데 이어 20일에는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택배기사가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또 최근에는 CJ대한통운 운송노동자가 경기도 곤지암허브터미널에서 배차를 마친 후 주차장 간이휴게실에서 쉬던 중 과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 노동자는 모두 13명에 달한다. 이들 중 택배 분류작업과 배달 업무를 담당하는 택배기사는 9명이며, 물류센터 분류 노동자 3명, 운송 노동자는 1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살아생전에 장시간 근로로 힘들다는 말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이들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두었더라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택배 종사자들의 노동은 일반인이 생각할 수 없을 만치 힘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평균 근무 시간은 주 71시간에 달한다.
이들은 보통 오전 7시에 출근해 오전 내내 배송할 물품을 직접 분류한 뒤 오후가 돼야 배송에 나선다. 배송을 완료하면 저녁 8시를 넘기는데 퇴근해도 수기송장 등록 등 추가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또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지난 2004년 주 5일제가 도입됐지만, 택배기사는 대부분 주 6일제 근무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이후 업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택배기사의 근무시간과 과로를 막을 장치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대리점의 갑질도 택배기사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는 택배사업의 경우 본사와 개인 사업자인 대리점 간의 계약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기사는 대기업이 아닌 대리점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본사-대리점-택배기사의 하청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대리점주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최근 택배기사의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한 주요 택배사들을 대상으로 과로 등의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가 제대로 돼 있는지 긴급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또 원청인 택배사와 대리점이 택배기사에 대한 안전 및 보건 조치를 관련 법률에 따라 이행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점검한 후 위반 사항 확인되는 경우에는 의법 조치할 계획이다.
물론 일부 택배사들을 상대로 위법성 여부를 조사, 조치하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택배 종사자들에게 현재 보다 나은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례로 택배 분류작업 인력 충원과 주 5일제 도입 등을 통해 택배기사의 근무 시간을 줄이고, 수수료 인상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택배기사의 산재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것이다.
아울러 택배 영업소별 건강 관리자 지정과 택배기사 정기 건강검진, 영업소 응급·방역 물품 구비 등도 절실한 상황이다.
일련의 택배기사 사망사건을 보면 지금은 택배기사를 향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처방이 아닌 제2, 제3의 택배기사의 과로사를 차단할 수 있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가 강구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