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의 노동과 법] 주52시간제, 중소기업의 비명

입력 2020-10-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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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동산과 경제 3법에 이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이슈가 전면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일자리 문제 등 민생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조사에 따르면, 이번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제조업의 경우 16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향후 10년간 4배 넘는 일자리가 감소할 정도로 심각하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부터 주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중소 제조업은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여곡절 끝에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주52시간제가 2018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근로자 30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는 주52시간제를 바로 시행하고, 50~299인 사업장의 경우 1년간의 계도기간을 거쳐 2021년 1월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영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이를 준수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52시간제가 실시되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대폭 단축됨에 따라 잔업이 일상화돼 있는 산업 현장에서는 많은 혼란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집중되어 있는 제조업의 경우 생산직의 근로시간 단축은 필요한 인력 확대와 추가 비용 부담 증가 등으로 회사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고 주52시간제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애로사항과 준비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보다 여유를 가지고 신중하게 실시해야 한다.

첫째, 올해 말로 중소기업 대상의 주52시간제 계도기간이 종료되는데,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어 어느 정도 현장에서 준비될 때까지 적용을 유예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이상의 경영 악화로 허덕거리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은행 대출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여 연명하는 형국이다.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어느 정도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라도 중소기업에는 적용을 유예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둘째,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탄력근로제 확대 개편이 필수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해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따라서 탄력근로제 기간을 최소한 6개월 이상으로 확대하고 선택근로제의 정산기간도 현행 1개월에서 최소 3개월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여당 대표가 취임 후 첫 경제 행보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찾은 자리에서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가 아직 입법화되지 못해 임시방편으로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올해 반드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셋째, 주52시간제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재해 등 피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할 경우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당사자가 합의한 경우에 한하여 주당 12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다만 천재·사변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주당 12시간을 초과해 근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물동량이 유동적이고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조선업과 같은 제조업에서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일시에 집중적인 잔업이 필요한데, 주52시간제로는 납기 준수가 거의 불가능하다. 업종별 특수성을 고려하여 노사가 합의하면 일본처럼 월·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허용토록 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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