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과 은행권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배상을 둘러싸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이 정해준 기한을 넘기며 자율 배상을 위한 은행협의체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완전한 보상은 어려워도 일부 배상안이라도 도출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협의체에서는 씨티은행과 우리은행이 진척을 보이는데, 특히 씨티은행은 최근 행장이 교체된 터라 신임 행장이 전향적인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몰린다.
4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윤 원장은 지난주 유명순 씨티은행장이 취임 인사 차원으로 금감원에 방문해 가진 티미팅에서 키코 배상을 재차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유 행장도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행장은 첫 여성 민간은행장으로,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취임되자 마자 금감원을 방문했다.
실제 협의체 중에는 씨티은행이 가장 속도를 내고 있다. 구체적인 업체나 배상 규모가 얘기될 정도로 논의가 진척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 “씨티은행과 우리은행은 최고경영자(CEO)의 의사를 요청해 기다리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최고경영자의 최종 결단만이 남았으며, 이에 따라 배상안이 결정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는 신임 씨티은행장이 결단을 내려줄 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다만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은행도 선제적으로 발표하는 데에는 부담을 표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은 일부 은행이 우선으로 발표해주면 다른 은행들이 따라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먼저 발표하는 은행에게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금감원이 기대한 완전한 보상안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은행으로선 자율배상은 법적 강제성이 전혀 없어서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키코 피해기업 손해배상은 민법상 소멸시효 10년이 지났다. 특히 금감원 분조위 권고에 대해 6개 은행 가운데 우리은행을 제외한 5곳이 거부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분조위 권고를 모두 수용했어야 자율협의체도 탄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도 스탠스를 ‘압박’에서 ‘설득’으로 바꾼 분위기다. 금감원은 다음주부터 은행 임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설득할 계획이다. 이사회에서 협의체 참여를 통해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한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우선 대상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키코 불수락 결정 후 이사회에서 “키코와 관련해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나머지 기업 중 금감원이 자율조정 합의를 권고한 추가 기업에 대해서는 은행협의체 참가를 통해 사실관계를 검토해 적정한 대응방안을 논의키로 했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편,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키코 보상을 위해 꾸린 협의체에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한국씨티·SC제일·HSBC·대구은행 등 10곳이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