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미국의 선택] 바이든 역전 일등공신은 ‘트럼프’

입력 2020-11-05 16:26 수정 2020-11-0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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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심판론’ 치중에 ‘트럼프 VS 反트럼프 구도’ 형성
히스패닉계 표심 공략 실패…플로리다·손쉬운 승리 놓쳤다

이번 미국 대선은 그야말로 야당인 민주당에 유리한 ‘최적의 타이밍’에 치러졌다. 정상대로라면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거저먹었어야 했다. 올해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미국을 제대로 강타했고,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세계 최다 코로나19 감염국’이라는 오명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고,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일어난 재확산 사태는 트럼프 정권에 대한 확인사살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치적이던 경제도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면서 완전히 사면초가에 빠졌다. 대선 투표 하루 전까지만 해도 세계와 시장은 모두 바이든 후보와 민주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싹쓸이하는 ‘블루웨이브(민주당 압승)’를 점쳤다.

하지만 ‘블루웨이브’는 없었다.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예상외 대접전을 벌였다. 대선 이튿날인 4일(현지시간)에는 두 후보가 서로 자신이 선거에서 이겼다면서 ‘승리 선언’을 하는 유례없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미국 선거 전문매체 파이브서티에잇(538)에 따르면 대선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여론조사 기관들은 바이든 후보의 전국 지지율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8%포인트는 더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하루 사이 전혀 딴판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의회 선거 역시 당초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석권할 것이라는 전망을 뒤엎고,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 수성에 성공할 태세다.

바이든 캠프와 민주당의 패착은 자신들의 강점, 공약 및 정책에 대한 선전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돌아선 민심에 호소하는 데 더 치중했다는 점에 있다. 모든 전략이 ‘트럼프’로 시작해 ‘트럼프’로 끝났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주된 메시지는 ‘트럼프 정권 심판’에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는 주된 공격 재료가 됐다. 바이든 후보는 바이러스 확산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으며, 이번 선거가 결국 트럼프의 리더십에 대한 신임 투표라는 점을 주된 선거 메시지로 삼았다. 사실상 바이든 후보는 없고 ‘트럼프’와 ‘반(反)트럼프’의 대결 구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바이든의 이런 전략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번 대선에서 ‘코로나 심판론’은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CNN방송이 대선 당일 1만2693명의 미국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표심을 가른 최대 요인은 ‘코로나19’가 아닌 ‘경제’였다. 응답자의 3분의 1이 투표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경제’를 뽑았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가장 중시한다고 대답한 유권자는 전체 응답자 6명 가운데 1명꼴이었다. 인종 불평등을 꼽은 비율(5명 중 1명)보다도 그 수가 적었다.

▲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각 델라웨어주 윌밍턴과 백악관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연설하고 있다. 윌밍턴·워싱턴/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각 델라웨어주 윌밍턴과 백악관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연설하고 있다. 윌밍턴·워싱턴/AFP연합뉴스

바이든이 공략한 주 유권자층도 트럼프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트럼프가 등 돌린 여성들의 표심을 얻고, 4년 전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백인 노동자 계층을 되찾아오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바이든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몰표를 줬던 백인 제조업 노동자들의 표를 빼앗아 오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갖고, ‘스크랜턴 시골의 중산층 가정 출신 바이든 Vs. 뉴욕 억만장자의 아들 트럼프’ 프레임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위스콘신주,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벨트 지역에서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히스패닉계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점을 이번 선거의 최대 실수로 꼽았다. 이번 대선의 최대어로 꼽히던 플로리다를 트럼프 손에 넘겨주게 된 것도 바로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승리에 대해 “라틴계 인구가 많은 카운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득표율은 4년 전보다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바이든이 히스패닉계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사실은 민주당도 알고 있었다. 이미 대선 수개월 전부터 당 내에서는 “바이든이 중서부 대도시의 흑인 유권자에게 공을 들이느라 히스패닉 유권자를 경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데 실패했고, 플로리다 수성을 통한 ‘손쉬운 승리’는 바이든의 손을 떠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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