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거룩한 습관

입력 2020-11-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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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일렉트릭 사장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새로운 미래의 중요한 핵심 용어가 되고 있다. 이 중 인공지능은 로봇으로 대표되는 선망의 신기술이라는 정도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언젠가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과 같은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리나라에서 일반인에게 실감 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 고수 이세돌을 이겼을 때부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세기의 대결이라는 인간과 기계(?)가 벌이는 승부의 결과에 전 세계는 경악하였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3국의 사람들은 더욱더 놀라는 상황이었다. 바둑은 이들 3국에서 발생하여 오랜 기간 가장 사랑받는 경기였으며 또한 보이지 않는 자부심이었다. 비록 근대화의 시기에 서양에 뒤졌지만 인류 문명의 뿌리는 동양에 있고, 그러한 뿌리 깊은 동양 문화의 지적 능력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둑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바둑에서마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현장을 보는 마음은 동양인에게는 이중의 어려움이었다. 컴퓨터에 인간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착잡함과 더불어 서양의 합리적 과학문명이 신비로운 동양의 마지막 보루마저도 넘어서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 심경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바둑협회는 규칙에 맞게 전개되는 바둑 경기에서 경우의 수를 세기 위해서는 300자릿수가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은 컴퓨터가 바둑으로 사람을 이기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현대과학 덕분에 이러한 불가능은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인간이 기계와 구분되는 것은 인간에게 창조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인간을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는 창조력의 산물인가? 아니면 단순한 기계적 훈련의 결과인가? 먼저 인공지능은 ‘창조력의 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지과학자 마거릿 보든(Margaret Boden)에 따르면 인간이 이루어내는 창조력은 기존 규칙을 따르되 실현 가능한 일의 범위를 확장하는 ‘탐구적 창조력’, 기존 규칙과 다른 흥미로운 새 틀을 제시하는 ‘접목적 창조력’, 그리고 일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 보기 드문 ‘변혁적 창조력’으로 구분될 수 있다.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은 이 중 첫 번째인 탐구적 창조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알파고는 바둑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 주어진 규칙을 따르면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알파고는 ‘그렇다면 다음은(if, then)’이라는 프로그래밍 방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창조를 해낸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러한 창조력을 가능하게 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습의 결과라는 것이다. 컴퓨터는 끊임없이 반복 학습을 통해 실패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면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도록 설계되었다. 보통의 인간이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학습 축적이 오랜 기간 이어져 오던 인류의 지적 성과물을 깨부수고 새로운 세계로 인간을 이끌어 가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개개인의 부족한 역량을 부족의 집단적 역량으로 보충하면서 오늘날의 인류 문명을 구축해 왔다. 현대 사회는 많은 사람과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일들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축적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해왔다. 아이큐가 좋은 사람보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 더 높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매일같이 책을 보는 습관이 학문적 성취를 이루게 하고,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체력 훈련을 하는 운동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갖출 수가 있다. 심지어는 정신적 깨달음마저도 훌륭한 습관의 산물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거룩한 습관’이 거룩한 성품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한다. ‘거룩한 습관’은 한 땀 한 땀,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는 실천일 것이다. 노년의 건강을 위해서는 간헐적인 과격한 운동보다는 하루 만 보를 걷는 습관이 더 좋다고 한다. 단순한 운동은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쌓여 무엇인가를 이루어낸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 낸 걸출한 성취는 이러한 ‘거룩한 습관’이 창조력이라는 이름으로 변환되어서 만들어졌음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만 보를 걷기 위한 산책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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