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소비자 편의냐 딜러 보호냐" 현대차 '중고차시장' 진출 딜레마

입력 2020-11-22 11:00 수정 2020-11-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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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매물ㆍ조폭연루ㆍ3자 사기…끊이지 않는 피해사례
자격 발급 조건이 허술하고, 처벌 기준 약한 점 노려
"신뢰회복 필요", "제2 타다 우려"

#. A 씨는 인터넷에서 푸조 중고차를 시가보다 훨씬 저렴한 580만 원에 살 수 있다는 판매 글을 봤다. 반신반의하며 딜러에게 연락하자 “경매 차량이라 저렴하다. 흔치 않은 기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약속장소에서 딜러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해외에서 온 매물이라 국내 차량과 부품이 달라 고장이 나도 수리할 수 없고, 구매 시 2200만 원 관세까지 부과된다고 한 것이다. 결국, A씨는 딜러로부터 같은 브랜드의 다른 차를 1610만 원에 구매했다. 구매한 차의 시가는 1130만 원에 불과했다.

최근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중고차 허위매물 사례다. 미끼매물을 이용해 소비자를 유인한 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시세보다 비싼 다른 차를 팔아넘기는 전형적인 사기 방식이다.

중고차 사기 관련 판결문에선 허위매물 방식 외에도 조폭 연루, 주먹구구식 가격 산정, 판매자와 구매자 양쪽을 모두 속여 구매대금을 가로채는 3자 사기 등 여러 가지 사기 유형이 등장했다.

‘1372소비자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이달 20일까지 중고차 중개·매매 불만 상담 건수는 2만3000건에 달한다. 불만 건수 부문에서 전체 업종 중 꾸준히 5위 안에 이름을 올린다. 소비자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고차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에서 사기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딜러 자격 발급 기준이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에서 발급하는 매매업종사원증은 비대면으로 8시간 정도의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다. 중고차 판매와 관련한 법률이나 좋은 차 매입 기준 등을 익히기엔 한참 부족한 시간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기로 이득을 보려는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종사원증조차 없는 ‘장외 딜러’가 사기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 무자격 딜러가 소위 손님을 ‘낚아오면’, 사원증 소지자가 나서 매매계약서 작성이나 명의이전 등의 행정업무만 처리하는 방식이다.

한 번 사기를 친 딜러가 반복 범행하기도 쉽다. 중고차 사기에 대한 법적 처벌이 느슨하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 실태를 고발하는 콘텐츠를 2년 가까이 제작해온 유튜브 채널 ‘차라리요’의 나환희 대표는 “사기 딜러 처벌이 벌금이나 집행유예 선에서 그치고, 경찰에서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아 재판까지도 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강력한 법적 처벌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사기 악순환을 끊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중고차 업계에서 그간의 행태를 반성하고, 적극적으로 자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완성차업체와 정부가 ‘소비자 후생’을 이유로 들며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사기 사례가 많아지자 유튜브 등 SNS에선 사기를 친 중고차 딜러를 직접 찾아가 소비자가 피해 입은 금액을 받아주는 채널이 큰 인기다. 사진은 중고차 딜러 업체 '차라리요'가 직접 게시한 사기 딜러 잡는 콘텐츠 (사진=유튜브 캡처)
▲중고차 사기 사례가 많아지자 유튜브 등 SNS에선 사기를 친 중고차 딜러를 직접 찾아가 소비자가 피해 입은 금액을 받아주는 채널이 큰 인기다. 사진은 중고차 딜러 업체 '차라리요'가 직접 게시한 사기 딜러 잡는 콘텐츠 (사진=유튜브 캡처)

중고차 업계에선 완성차 업체가 시장에 진입하는 논리로 ‘낮은 소비자 신뢰도’를 활용하는 것을 우려한다. 영세 딜러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시장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 편의와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으로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던 ‘타다’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0년 넘게 중고차 시장에 몸을 담아온 이하영 한국자동차매매조합 서울 강서 이사장은 “(중고차 딜러들이) 소위 ‘아비 어미’도 속여 먹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정 작용을 하려고 업계 내에서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지난 시간 동안 소비자 신뢰를 얻지 못한 건 뼈아프지만, 우리에게도 자체적으로 살아남을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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