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꼬리잡기] '성관계 몰래 녹음 시 처벌' 법안 논란…전문가들의 생각은?

입력 2020-11-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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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대표 발의한 이른바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 개정안을 두고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대표 발의한 이른바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 개정안을 두고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대표 발의한 이른바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 개정안을 두고 찬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음성 녹음도 '성범죄'라는 이유로 법안을 지지하는 반면, 반대 측에서는 무고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19일 개정안이 공개된 국회입법예고 홈페이지는 수만 개의 댓글이 달리며 남녀 간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 개정안은 동의 없는 성관계 음성녹음도 성관계 장면 촬영과 동일하게 성폭력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으로, 녹음된 음성 파일 등은 불법 영상물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협박하거나 리벤지포르노의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제안 이유다.

개정안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음성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녹음하거나 퍼뜨린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영리 목적으로 배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현행법은 성관계를 동의 없이 촬영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지만, 단순 녹음에 대해선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어 녹음을 유포하면 비교적 형량이 낮은 명예훼손죄로 처벌해왔다.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문성호 소장은 "녹취가 불법화되면 더는 스스로 억울함을 입증할 수 없는 방법이 없어지게 돼 실제로 자신이 억울하더라도 무죄를 받아낼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문성호 소장은 "녹취가 불법화되면 더는 스스로 억울함을 입증할 수 없는 방법이 없어지게 돼 실제로 자신이 억울하더라도 무죄를 받아낼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법안 반대 측 "무죄 입증할 방법 사라져…성범죄 피해자도 문제"

성범죄 무고에 대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문성호 소장은 "녹취가 불법화되면 더는 스스로 억울함을 입증할 수 없는 방법이 없어지게 돼 실제로 자신이 억울하더라도 무죄를 받아낼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문성호 소장은 "현재 성범죄 재판은 무죄추정의 원칙·증거주의재판·검사입증책임 같이 당연히 지켜져야 할 형사소송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피고가 스스로 무죄 증거를 제출해야만 무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증거 중 가장 확실하게 본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게 관계 당시의 녹취다. 실제로 대부분 사례에서 녹취를 통해 무죄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성관계 녹음 관련 피해 사례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선 "이미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이 마련돼 있다"며 "녹취로 협박하는 경우엔 협박죄로 처벌이 되고, 유포하더라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에 위반되며, 제3자에 들려주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다. 마치 법안이 미비해서 처벌이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문 소장은 "성범죄 피해를 본 경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성범죄 피해를 봤을 때 상대방의 유죄를 입증하는 경우가 대부분 행위 때의 녹음"이라며 "범죄자는 증거를 인멸하려고 하고 피해자나 무고한 사람은 증거를 확보하려고 한다. 증거를 확보하려는 수단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겠냐"라고 되물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법안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반발에 대해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녹음을 막으면 나중에 강간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법안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반발에 대해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녹음을 막으면 나중에 강간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법안 찬성 측 "녹음도 성폭력으로 기능…일반 녹취와 달라"

사이버 공간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사실 이런 법률이 필요하진 않은지 2017년부터 검토를 했다"며 "아주 많은 사례가 접수된 것은 아니긴 하지만 현재 처벌할 수 있는 법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입법 공백이 느껴졌다.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고 차후의 입법 공백을 찾아봤을 땐 녹음처벌법도 필요한 법률이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승희 대표는 법안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반발에 대해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녹음을 막으면 나중에 강간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본인이 참여하는 대화에선 녹취하는 것이 현재 법령상 문제는 없지만, 상대방의 직접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고 녹음을 하게 되면 대화 장면뿐만이 아니라 성관계라는 특수한 장면이 함께 녹음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폭력으로 기능하는 사례들이 있다"며 "그런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성관계 미동의 녹음은 일반 대화의 녹취와 다른 성격이라는 것을 반발하는 사람들이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피해자도 피해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실제 사례를 반영한다기보다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본 가상의 사례들에 관한 주장"이라며 "아무리 다른 방식의 성폭력이라고 하더라도 녹음을 그 자리에서 하기가 쉽지는 않다. 진짜 성폭력 사건이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녹취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서도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 개정 법안에 대한 견해가 갈렸다. (게티이미지뱅크)
▲법조계에서도 ‘성관계 몰래 녹음 처벌’ 개정 법안에 대한 견해가 갈렸다. (게티이미지뱅크)

법조계 "증거 확보 제한" vs "2차 가해 막아야" 의견 팽팽

법조계에서도 법안에 대한 견해가 갈렸다. 형사전문변호사인 법무법인 LF 이경민 변호사는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을 너무 제한적으로 막는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며 반대의 뜻을 드러냈다.

이경민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은 CCTV가 있거나 다른 목격자가 있는 경우가 없다는 특수성이 있어서 증거를 확보하려고 하면 녹음을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이런 증거마저도 없게 되면 일관된 진술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확대될 수 있는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실무에서는 녹취 내용도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지, 술에 취했는지 등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증거로 참고된다"며 "만약 성범죄를 처벌한다는 취지로 입법하고자 한다면 성관계 당시 상황을 녹음하는 행동에 대해 처벌한다기보다도 녹음한 내용을 유포한다든지 등 제한적으로 처벌하는 내용으로 입법하게 되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개인의 인권 및 공익제보 관련 사건을 담당해온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양태정 변호사는 "지금까지는 성관계를 동의 없이 촬영한 경우만 처벌됐지 녹음한 경우는 처벌하지 않았다"며 찬성의 뜻을 보였다.

양태정 변호사는 "성범죄 무고의 경우 성관계 시 녹음 파일에 거부하는 의사가 없다고 해서 위력이나 강압적인 성관계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성폭력 가해자들이 녹음 파일을 다른 데 공개하기도 하고 법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꽤 있었던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도 성범죄를 입증할 수 없다는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선 "성관계 녹음의 경우 무조건 다 녹음하는 걸 처벌하기보다도 범죄를 저지르거나 성적 만족을 위한 목적으로 녹음하는 등 구성요건 상의 조항을 둬서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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